[아하, 이맛!]씹을수록 고소한 뻘밭의 산삼 ‘세발낙지’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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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낙지를 먹을 때에는 우선 대가리를 잡고 한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로 낙지의 발가락을 죽죽 훑어 내린다. 그러고 나서 사정없이 대가리를 우적 깨물면서 두 손으로 연방 낙지발을 훑어 내리면서 씹어 먹는다. 씹는 동안에도 흡판들이 간지럽게 볼따구니 안쪽과 혀에 간질간질 들러붙는다.’ <‘황석영의 맛과 추억’에서>

햐아! 갑자기 입천장에 낙지빨판이 달라붙는다. 입안 벽에도 뭔가가 물컹 들러붙는다. 그리고 사정없이 빨아댄다. 입천장이 아릿하다. 좌우 볼우물이 옴죽거린다. 곰방대 빠는 노인네 뺨이 따로 없다. 오톨도톨 울컹물컹 혓바닥에 걸리는 것도 있다. 입천장 끝 코 들머리에 그득한 느낌이 온다. 콧구멍이 개펄 구멍인 줄 알고 파고든다. 캑캑거린다.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힌다.

세발낙지는 산 것을 통째로 한입에 먹어야 제맛이다. 그렇다고 영화 올드보이의 최민식처럼은 아니다.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먹는다. 쇠 젓가락에선 낙지가 미끄럼을 탄다. 나무젓가락은 덮어놓고 가운데를 쪼개버리면 안 된다. 맨 윗부분 1cm 정도만 벌린 뒤 그 사이에 산낙지 머리통 아래 목 부분을 잽싸게 끼워 넣는다. 그런 다음 낙지의 8개 다리를 손으로 한두 번 훑어 내린 뒤, 돌돌 감아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한입에 날름, 머리통부터 우걱우걱 천천히 씹는다. 다리부터 먹다간 숨이 막힐 수도 있다. 낙지다리는 새끼 꼬듯 지그재그 식으로 혹은 어긋버긋하게 감아야 풀리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세발낙지는 ‘손으로 훑어 먹는 맛’이다.

찬바람이 불면 개펄 속의 낙지들이 준동한다. 세발낙지들이다. 개펄은 세발낙지들의 놀이동산이다. 아니 사냥터이다. 손가락만한 칠게나 작은 조개들을 잡아먹으러 온 세발낙지들이 개펄을 헤집고 다닌다. 천둥벌거숭이도 그런 벌거숭이가 없다.

세발낙지는 다리가 3개가 아니다. 가늘 ‘세(細)’자의 세발이다. 다리가 가늘고, 머리통이 작다. 개펄을 미꾸라지처럼 요동치고 다닌다. 힘이 천하장사다. 살이 부드러워 달고 고소하다. 갯가사람들은 주저 없이 세발낙지를 ‘뻘밭의 산삼’이라고 부른다. 주낙이나 통발로 잡는 큰 낙지 열 점과 개펄에서 손으로 잡는 세발낙지 한 점을 바꾸지 않는다. 함민복 시인은 강화도에서 산다. 자칭 ‘함박꽃 함, 민들레꽃 민, 복사꽃 복’이다. 가끔 낙지도 잡는다.

‘땅속 낙지구멍은 참으로 다양했다. 백 개면 백 개 낙지구멍의 길이가 다르고 구멍에서 가닥을 친 구멍 수와 모양이 달랐다. 삽으로 파고 손으로 쑤셔 들어가면 낙지들이 숨어드는 곳도 다 달랐다. 개펄 속에 박혀 있는 죽은 조개껍데기에 벤 손등의 상처가 손바닥 손금보다 더 깊고 많이 파이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낙지 한 코(20마리)를 잡았다.’ <함민복의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에서>

뻘낙지는 봄가을에만 잡는다. 여름겨울 낙지는 개펄 한참 앞쪽바다에서 산다. 봄낙지는 알을 낳으러 뻘밭에 온다. 여기저기 구멍을 뚫지 않는다. 다소곳이 알 낳기 좋은 한 구멍에 들어앉아 몸을 푼다. 그만큼 잡기도 쉽다. 하지만 수가 많지 않다.

가을낙지는 에너지를 보충하러 개펄을 찾는다. 뻘밭의 먹잇감을 찾아 온종일 몽골의 기마병처럼 질주한다. 소떼를 쫓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초원을 누빈다. 구멍이 수십 갈래로 갈라진다. 사냥의 미로다. 길이도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잡기 힘들다. 그러나 물때마다 새로운 낙지들이 몰려온다. 몸을 부지런히 살찌워야 내년 봄 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포 독천식당(061-242-6528)은 세발낙지요리의 소림사다. 낙지요리 한 가지를 들고나가 남도음식축제에서 보란 듯이 대상을 받았다. 목포 호산회관(061-278-0050)도 이에 못지않다. 무안낙지골목의 내고향뻘낙지(061-453-3828), 무안군청 옆 하남회관(061-453-5805) 등도 이름난 곳이다.

세발낙지는 산 낙지로만 먹는 게 아니다. 낙지구이 낙지산적 낙지회 낙지전골 낙지볶음 연포탕 철판낙지 등 많다. 무안에 가면 낙지호롱구이도 있다.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돌돌 만 뒤, 매콤하고 새콤한 양념장을 발라 구운 것이다. 살살 풀면서 먹는 맛이 그만이다.

낙지요리는 양념을 많이 하지 않아야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살릴 수 있다. 연포탕이 대표적이다. 연포탕은 무 박속 미나리 양파 마늘 등을 넣고 푹 끓인 국물에 살아 있는 세발낙지를 넣어 살짝 데치면 된다. 마지막에 실파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으면 국물이 더 시원하다.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좋다. 낙지는 오래 끓이면 질기다. 살짝 익혀서 통통하고 연할 때 먹는 게 맛있다. 서울 광화문 인근 신안촌(02-738-9960)의 연포탕이 맛있다.

세발낙지 중에서 다리가 굵고 머리가 큰 것들은 중국산인 경우가 많다. 머리가 미끈하고 눈이 튀어나온 것이 좋다. 빨판이 손에 척척 달라붙는 것이 싱싱하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 낙지는 힘이 세다. 서울 사람들은 살아있는 세발낙지도 통째로 먹지 않는다. 칼로 잘게 썰어 먹는다. 토막 난 낙지다리들이 접시 위에서 꼼지락거린다. 소금장에 닿으면 더욱 몸부림친다.

2001년 한국축구대표팀은 울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어느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때 나온 게 산낙지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한 네덜란드 코칭스태프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한국선수들은 천연덕스럽게 잘도 먹었다.

그때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이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산낙지를 건드렸다. 그러자 핌 베어벡 코치가 “한국팀이 월드컵 4강에 오르면 산낙지 먹는 걸 고려해보겠다”며 재빨리 두 손을 들었다. 히딩크 감독이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목표가 그것밖에 안돼? 난 한국팀이 결승에 오르면 산 낙지를 먹겠다.”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다른 음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발낙지는 개펄 속에 사는 안드로메다 우주인이다. 뻘 속에 들어가려면 일단 머리가 매끈해야 한다. 머리를 먼저 들이밀어야 좋은 차로를 탈 수 있다. 우당탕탕! 낙지는 세계 최고의 ‘비보이’다. 전후좌우 위아래 온 몸이 360도 굴절된다.

인생도 세발낙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펄에서 하루 종일 온몸을 굴린다. 엎어지고 뒹굴고, 박이 터지도록 머리를 서로 들이민다. 닿는 것마다 빨판을 대고 빨아댄다. 모두들 그렇게 뻘밭에서 구르면서 산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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