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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권장도서 100권]<93>보조법어-지눌

입력 2005-07-21 03:10업데이트 2009-10-08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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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럽고 잘못되어갈 때, 나서서 지혜로운 가르침을 주고 직접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 고려 중기의 불교승려인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도 그런 이로 꼽힌다. 지눌은 한국 불교역사, 특히 한국 불교사상사에서 신라 때의 원효(元曉)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추앙된다. 그의 글을 모아놓은 것이 ‘보조법어’다.

당시 고려사회는 민란이 거듭되고 무신정권이 등장하여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불교계에는 분열과 타락상이 심각했다. 지눌은 세속의 명리를 좇는 데에만 급급한 당시 불교계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수행을 하는 승려조차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된다는 불교 본령의 목표는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기껏해야 내생에 좋게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데 대해서 비판을 가했다.

그러면서 정과 혜를 나란히 닦아 성불을 목표로 하는 수행에만 전념하자는 정혜결사(定慧結社) 운동을 벌였다. 정이란 바깥의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혀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혜는 맑은 정신으로 세상의 실상을 환히 비추어보는 지혜를 가리킨다. 지눌은 그 둘을 함께 닦는 수행을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이라 일컬었다. 이것이 지눌이 제시한 수증론(修證論·닦음과 깨달음에 관한 이론) 세 가지 가운데 첫 번째다.

지눌은 또한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이라는 수증론을 제시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님인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스스로 범부로 살고 있다는 게 선불교의 관점이다. 마치 열쇠를 손에 들고도 한참 찾아다니다가 어떤 계기에 문득 제 손에 든 열쇠를 알아차리듯이, 자기의 본래 정체를 알아차리는 깨달음은 단박에 일어난다. 이를 일컬어 돈오(頓悟)라 한다.

하지만 깨달음만으로 부처님으로 살게 되지는 않는다. 워낙 오랫동안 범부로 살아가는 습관에 속속들이 젖어있기 때문이다. 얼음이 본래는 물이라 해도, 얼음 그대로 물 노릇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이 물 노릇을 하게 하려면 열을 가하여 녹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치열한 수행과정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야 한다. 이를 일컬어 점수(漸修)라고 한다. 이는 수행과 깨달음에 관한 선종(禪宗)의 사상을 교종(敎宗)인 화엄사상을 가지고 설명한 것으로, 선교일치를 표방하여 당시 불교계의 분열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마지막으로, 지눌은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을 천명했다.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이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으로 자신의 의식을 꽉 채워 망념이 스며들 틈이 없게 하면, 그 의심덩어리가 커지다 못해 터져버리는 깨침의 체험에 이른다. 지눌을 통해 한국불교에 간화선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자는 땅으로 인하여 일어선다. 땅에 의지하지 않고 일어설 수는 없다.” 보조법어의 ‘권수정혜결사문’의 첫 구절이다. 우리가 잘못 살아가는 것은 마음을 잘못 써서 그런 것인데, 올바르게 되는 것 또한 바로 그 마음에 달렸다는 뜻이다. 궁극적인 해결은 저 밖 어디 다른 데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며, 모든 문제를 우리가 만들었고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 해결책이 보인다는 교훈이다. 만사를 소유의 문제로만 보는 습관이 든 이 시대에 새삼 귀중하게 새겨볼 만한 가르침이다.

윤원철 서울대 교수 종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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