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표절로 영화리뷰 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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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고’
‘미스터 고’
영화 ‘미스터 고’는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독특한 설정에서 시작한다./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서커스단을 이끌어나가는 15세 소녀 웨이웨이(서교)에게는 45세의 고릴라 친구 링링이 있다./할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웨이웨이는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의 제안에 한국행을 결심한다./성충수의 제안은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이 한국 프로야구단에 입단해 실제 선수들과 경기를 펼치는 것./링링은 괴력을 앞세워 곧바로 홈런타자가 되고 야구팬들은 링링에게 열광한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링링은 야구선수가 아닌 돈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다./

2009년 국가대표 스키 점프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국가대표’로 전국 800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던 김용화 감독이 또 한 번의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미스터 고’는 4년여에 걸친 기획 및 기술개발, 총 400여 명 스태프들의 1년 이상의 후반 작업 끝에 완성된 작품./첫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게 등장하는 고릴라 링링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완성된 입체 3D의 기술력을 자랑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혹성탈출’에 비교한다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얼굴 표정 역시 자연스럽고 다양하며 한 올 한 올 세세하게 표현된 털의 질감 역시 뛰어나다./실제 공이 날아와 몸을 피하게 하는 3D 효과도 실감난다./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는 냉정한 프로야구의 비즈니스 세계를 풍자하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의 더불어 사는 진정한 가치를 곱씹게 만드는 영화의 글로벌한 주제는 큰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먹먹한 감동을 남긴다./만약 이 영화가 ‘동물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역설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면, 그 의도는 꽤 성공적인 셈./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무엇보다 영화의 스토리가 아닌 기술력이 더 빛나는 점이 가장 아쉽다./‘미녀는 괴로워’와 ‘국가대표’가 신파에 가까울 정도로 관객의 감정을 고양시킨 것에 비하면 ‘미스터 고’가 전하는 감정의 페이소스는 조금은 약하게 느껴진다./울먹거리거나 가슴 한 구석이 찡하지만 거기까지다./

배우들의 연기도 조금은 들떠 있다./오히려 링링의 절제된 눈빛이 더 인상적일 정도로, 주요 장면마다 출연진들의 감정이 극대화되어 있어 다소 아쉽다./‘국가대표’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할 것이고 수백억이 투자된 미끈한 오락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은 고릴라 링링과 3D 효과에 만족할 것이다./

지난달 17일 개봉되었다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영화 ‘미스터 고’의 리뷰다. 어떤가. 참으로 군더더기 없이 쓴 비판의 칼날이 살아있는 리뷰가 아닌가 말이다. 내용 요약, 기술적 도전에 대한 평가, 이야기의 짜임새와 배우 연기력에 관한 촌평까지, 그야말로 빠진 게 없는 리뷰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쓴 리뷰에 웬 자화자찬이냐고? 놀랍게도 이 리뷰는 필자가 쓴 글이 아니다. 100% 표절이다. ‘미스터 고’에 대해 이런저런 언론에 실린 20개의 서로 다른 리뷰에서 딱 한 문장씩을 골라내어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재배열했더니 스무 문장으로 이뤄진 이런 놀라운 리뷰가 완성되었다. 리뷰를 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 인터넷 검색에 15분, 한 문장씩 뽑아내는 데 10분, 문장들을 문맥에 맞게 배열하는 데 5분이면 충분했다.

독자들이여! 만약 필자가 표절임을 양심껏 밝히지 않았다면 이 리뷰가 100% 베낀 글임을 알아챌 수 있었을까? 이번 표절 작업(?)을 하던 중 발견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미스터 고’에 관한 리뷰 중 상당수가 매우 흡사한 내용으로 전개된다는 점이었다. 이토록 영화평론에 있어서도 남의 글을 베끼는(좋은 말로는 ‘참고하는’) 행태가 없지 않은 것이다.

실로 ‘표절의 시대’인가. 존경 받는 대학교수와 스타강사의 논문에도 잇따라 표절 의혹이 제기되고, 대학생들은 리포트 전문 유료 인터넷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리포트들을 짜깁기해 깔끔하게 과제를 제출한다. 대입 자기소개서도 사교육 전문가들이 잘된 자기소개서들에서 발췌한 내용을 토대로 대필해준다.

하긴, 진짜와 가짜를 논하는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미스터 고’처럼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짜 배우가 진짜 배우보다 더 연기를 잘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인데. 표절이 워낙 비일비재하다 보니 이젠 ‘편집의 예술’이라고까지 칭송해야 할 판이다.

※완벽한 표절을 위해 위 리뷰에 사용된 20개 문장의 출처는 일절 밝히지 않습니다. “실수로 출처를 밝히지 않았을 뿐 결코 표절이 아니다”라는 게 요즘 ‘표절 전문가’들이 내놓는 구차한 변명의 트렌드이기 때문입니다. 필자의 리뷰도 실수로 출처를 밝히지 않았을 뿐 표절이 아닙니다. 메롱.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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