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라스트 갓파더’ ‘황해’ 어떻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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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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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용으로 최근 잇따라 개봉한 화제작 세 편은 기대만큼 만족스럽진 못했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1부’는 스펙터클을 보여주진 않은 채 대사만 고막이 터질 만큼 나불거려 ‘낚였다’는 인상을 받았고, “영구 없다”로 유명한 바보 캐릭터 ‘영구’를 등장시킨 ‘라스트 갓파더’(이하 ‘갓파더’)에는 진짜로 영구가 온데간데없이 찰리 채플린의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었다. 또 ‘황해’는 뭔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도착에 가까운 집중력이 돋보였지만 도대체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는 잘 모르겠는 영화였다. 특히 ‘추격자’를 만든 나홍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황해’와 심형래 감독·주연의 ‘갓파더’를 두고 나는 요즘 ‘이 영화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자, 지금부터 이 영화들 속에 숨어있는 새로운 가치를 문답형식으로 풀어본다.》

바보 캐릭터 ‘영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곱씹어볼 만한 영화 ‘라스트갓파더’.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바보 캐릭터 ‘영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곱씹어볼 만한 영화 ‘라스트갓파더’.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Q: ‘갓파더’가 지난 주말 국내 흥행 1위에 오르며 개봉 첫 주 관객 12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 영화가 그 정도로 재미있는 영화인가요?

A: 아닙니다. 그냥 연말연시에 부모가 애들 손잡고 가서 볼 영화가 이것밖에 없어서일 겁니다. 이에 앞서 개봉한 ‘해리포터…’가 영 꽝이었으니까요.

Q: ‘갓파더’ 개봉을 앞두고 심형래 씨가 TV 프로그램은 모조리 나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주기에 바로 그런 영구의 모습을 기대하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영구의 몸 개그는 영 개운하질 않습니다. 뭔가 하다 만 느낌이에요.

A: 혹시 천재가 아니신지요? 한국 관객 시각에선 이 영화 속 영구 모습이 낯섭니다. 왜냐? 바로 ‘수출용’ 영구이기 때문이지요. 원래 오리지널 영구 캐릭터는 ‘진짜 바보’입니다. 바보짓만 하고 철저히 망가지고 남을 웃기는 것 외엔 딱히 사회에 득 될 게 없는 인물이죠.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 속에 사는 한국인들에겐 이 영구가 얼마나 위안(?)과 우월감을 선물해주는 소중한 존재이겠습니까. 하지만 미국에선 이게 안 통해요. 미국인들은 ‘진짜 바보’를 안 좋아합니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바보를 가장한 천재’ 캐릭터를 좋아하지요. 이 영화를 보세요. 영구가 “이젠 터프해지겠다”며 동네 처녀의 롱스커트 밑자락을 쫙 뜯어버렸는데 이게 미니스커트 산업의 시작이 된다는 해프닝이 있죠? 미국인들은 이렇듯 ‘진정한 가치를 생산해내는 선지자적 바보’를 좋아한다는 믿음을 심 감독은 갖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더 유치하게 막 나가질 못한 거죠.

Q: 아, 그럼 미국인들은 이런 영구의 모습을 좋아하겠군요.

A: 안 좋아할 겁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수출용’으로 만든 심 감독의 전작 ‘디워’도 정작 미국에선 안 되고 한국에서만 흥행했다는 사실이죠. 그래서 심 감독이 똑똑한 겁니다.

약육강식의 세계를 바라보는 나홍진 감독의 야수적 시각이 돋보이는 영화 ‘황해’. 사진 제공 영화인
약육강식의 세계를 바라보는 나홍진 감독의 야수적 시각이 돋보이는 영화 ‘황해’. 사진 제공 영화인
Q: 나 감독의 전작 추격자보다 이번 황해가 훨씬 더 잔인하고 불편합니다. 그러잖아도 사이가 좋지 않은 아내와 이 영화를 봤다가 이혼할 뻔했어요.

A: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추격자가 황해보다 훨씬 더 끔찍하지요. 끔찍하다는 건 단순히 스크린에 전시되는 흉기나 피의 양으로만 가늠되는 건 아닙니다. 관객이 등장인물에 자신을 동화시키고 이야기에 몰입함으로써 몸으로 실감하는 끔찍함이 더 관건이지요. 이런 면에서 황해는 체감잔혹도가 다소 떨어집니다. 원 없이 자르고 베고 짓이기면서 피 칠갑이 되는데, 관객 입장에선 영 내 얘기 같지가 않은 거죠.

Q: 뭔가 유식한 말씀 같습니다만….

A: 음, 다시 말해 등장인물이 꼭 그런 폭력을 행사해야만 할 절실함이 부족하다고 보는 거죠. 추격자의 경우는 폭력 자체가 절박하게 그려집니다. 그래서 피해자뿐만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는 살인마까지도 폭력이라고 하는 악령의 하릴없는 희생자처럼 느껴지죠. 반면 황해 속 폭력은 과잉입니다. 캐릭터를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 질식시켜버리니까요.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폭력의 강도가 세지면 세어질수록 극적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Q: 아, 이제 이해가 가는군요. 하지만 황해 속 폭력은 ‘악마를 보았다’의 그것과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뭐랄까요. 더 살벌하고 리얼하게 와 닿았어요.

A: 우리가 여전히 나 감독의 미래에 대해 기대하고 궁금해해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악마를…’ 속 살인마는 도륙을 통해 쾌감을 느낍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 황해는 다릅니다. 도끼를 숟가락만큼이나 가볍게 휘두르며 남의 면상을 갈기는 면가(김윤석)의 폭력은 그런 관습적 폭력이 아닙니다. 면가에게 폭력은, ‘법이니 제도니 도덕이니 하는 당의로 감싸인 인간세상도 까놓고 보면 약육강식만이 지배하는 세렝게티 초원일 뿐’이라는 원시적이고 야수적인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면가의 폭력은 그가 이 동정 없는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종의 언어이지요. 황해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인간이 또 다른 형태의 ‘동물의 왕국’에 살고 있을 뿐이라는 서글픈 현실과 직면하게 되는 겁니다.

Q: 그건 좀 ‘오버’한 해석 아닐까요? 우리가 짐승이라니….

A: 생각해 보세요. 극장에서 옆에 앉은 웬 남자가 다리를 찢어져라 벌려서 내 자리가 좁아진다면 당신 같은 남자는 어떻게 행동하나요?

Q: 저도 허벅지를 쩍 벌려 똑같이 응징하거나, 아니면 팔걸이라도 차지함으로써 적의 도발에 단호히 대처합니다.

A: 그것 보세요. 그래서 우린 짐승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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