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청소년 역사강좌]제4강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국제관계’

  • 입력 2004년 10월 25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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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23일 열린 ‘2004 청소년 역사강좌’ 제4강이 끝나고 참석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었다. 이날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국제관계’를 주제로 강연한 구대열 이화여대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중국은 한국의 임시정부를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오히려 임정을 교묘하게 통제하고 이용하면서 한반도 내 통제권을 넓히려 했다”고 말했다. 특히 구 교수가 “중국은 임정을 이용하려 했던 국민당 정부 때나 한국전에 개입했던 공산정권 때나 모두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강화란 측면에서 일관된 자세를 보여왔다”면서 “한 국가의 외교목표는 주로 그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추진되기 마련”이라고 강조한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청중이 많았다. 다음은 강연 요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은 베이징(北京)과 난징(南京)을 일본에 모두 점령당하고 충칭(重慶)에서 항일투쟁을 벌였다. 여력이 없음에도 중국은 주변국 문제,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였다. 당시 미국은 ‘동북아 평화체제’란 큰 그림 속에서 한국을 바라봤지만, 중국은 구체적인 목표 아래 접근했다. 그 목표는 작게는 ‘미국 영국과 손잡고 한반도내 소련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것이었으며, 종국적으론 ‘과거처럼 한반도를 중국의 절대적 지배 아래에 두겠다’는 것이었다. 한편 영국은 한국의 독립을 약속할 경우 이것이 영국 식민지들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대 한반도정책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주의’로 물들어 있었다. 결국 전쟁이 끝나면 한국을 ‘오랑캐’로 규정하던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끝내 한국의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는 알려진 것처럼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임정을 인정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임정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아니라 ‘한국 독립당의 임시정부’, 즉 일개 정당의 임시정부로 호칭한 데서도 이런 의도는 드러난다.

국민당 정부는 미국과 영국에게도 “경기도 충청도 출신 독립운동가와 황해도 평안도 출신 독립운동가 사이에 분열이 심하다. 한국은 독립운동 단체들 간 반목이 심해 임시정부만 승인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면서 지역 분열을 부각시켰다.

중국은 광복군을 교묘하게 통제하고 그 활동을 제약했다. 광복군에 대한 지원을 줄여 반쯤 굶주리게 함으로써 새로운 세력 영입을 어렵게 만들었다. 또 국민당 군사위원회는 임정과 맺은 ‘한국광복군 행동 준승 9개항’을 통해 광복군이 중국 군사위원회의 직접 통치를 받도록 규정했고, 광복군 사령관인 이청천을 충칭에 남아있게 함으로써 광복군과의 합류를 막기도 했다. 당시 광복군은 겨우 200명에 불과했다. 공산당의 도전을 받고 있던 국민당 정부 입장에서는 광복군이 성장할 경우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 또 다른 ‘8로군’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연합군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중국은 한국 관련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미국과 영국에 대해 ‘한국은 독립 자격이 없다’는 식의 ‘심리적 선전전’을 강화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재정 , 영국은 수송, 소련은 보건 문제를 분담하는 대신 중국은 치안 등의 문제를 전담한다는 역할분담론을 주장하면서 한국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렇듯 중국은 한국이 신탁통치로 이어지게 하는데 ‘결정적’은 아니라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으로 지금의 대만으로 쫓겨 가게 됨에 따라 결과적으로 중국은 한반도 분단 문제에서 면죄부를 받게 된 셈이다.

:구대열 교수는:

구대열 교수(59)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외교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제국주의와 언론: 배설-대한매일신보 및 한영일 관계’(1986년·이대 출판부), ‘한국 국제관계사 연구 1-일제시기 한반도의 국제관계’(1995년·역사비평사), ‘한국 국제관계사 연구 2-해방과 분단’(〃) 등이 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정정혜시-김지학군 母子 즉석토론▼

정정혜씨(왼쪽)가 강연 후 아들 김지학군과 토론을 벌이고 있다. -안철민기자

정정혜씨(46·주부·경기 안양시 평촌 꿈마을)는 아들 김지학군(14·귀인중학교 3년)과 함께 23일 역사강좌를 들었다. 정씨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이날 처음 수강했다. 이들 모자는 강연이 끝난 뒤 즉석에서 토론을 벌였다.

국사와 사회 과목에 관심이 많다는 김군은 “교과서를 통해선 임시정부가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배웠는데 강의를 듣고 중국이 이중적 태도를 보였음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과거 독립운동 단체들 간 분열이 심했고, 또 이런 분열상이 중국에 의해 ‘한국인들은 서로 잘 다투니 독립할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편의적으로 해석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열강들의 틈에 끼어 한국이 이렇게 성장한 것은 분명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 국내 갈등 양상을 보니 ‘남 탓’ 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반성할 대목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군은 이어 “요즘 고구려사를 둘러싸고 이런 저런 얘기가 많지만 국내 고구려사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중국이 더 우리의 역사를 건드리기 전에 힘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어려운 내용이지만 이해하려고 애쓰는 아들이 대견스럽다”면서 “입시위주 교육으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은데 이런 ‘학교 밖 교육’을 통해 좀더 넓게 배웠으면 한다”고 만족했다.

이들 모자 사이엔 ‘행복한 갈등’이 있다. 김군은 장차 법대생이 되기를 원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멋진 역사학도’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정씨는 “역사 공부하는 남편(국학진흥원 김순석 수석연구원)이 너무 매력적이다”면서 “역사를 알면 현재의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제4강 질의 응답▼

23일 강연 후 한 초등학생이 강사인 구대열 교수에게 질문하고 있다. 이날은 특히 초등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질문을 펼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안철민기자

23일 열린 ‘청소년 역사강좌’ 제4강에는 청소년과 학부모 등 260여 명이 참석했다. 강의 후에는 열띤 질의가 이어졌다. 초등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질문해 눈길을 끌었다.

이지환군(백마초등학교 6년)은 “광복군을 중국이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제가 읽은 책에는 중국이 광복군을 적극 지원했다고 돼 있어요. 어떤 게 진실인가요” 하고 물었다.

강사인 구대열 교수는 “내가 학생에게 돈 100원을 줬다고 칩시다. 내 입장에서는 분명 학생을 ‘도와준’ 거죠. 하지만 100원은 학생이 살아가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죠. 임시정부가 중국과 돈독한 관계를 가졌던 건 사실이지만, 중국은 한국의 독립보다는 한반도에서 일정 지분과 영향력을 갖겠다는 의도가 강했죠”라고 답했다. 구 교수는 “청소년들도 기존 역사서술이 올바른 건지 아니면 민족자존의 입장에 기울어진 건 아닌지 생각하며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암여중 교사인 송민숙씨(여·47)는 “중국이 고구려도 자신들의 변방이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에 대해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난감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구 교수는 “‘백발삼천척(白髮三千尺)’이란 표현에서도 보듯 중국인들의 과장된 표현은 역사기록에서도 나타난다”며 “중화주의 입장에서 한반도를 ‘오랑캐’로 지칭했지만, 이는 사실 문명의 ‘우열’이 아닌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길한석군(마포초등학교 6년)은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밀리고 있었는데 한반도에 굳이 야심을 드러낼 이유가 있었을까요. 미국과 영국을 자극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라고 질문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구 교수는 “중국이 학생처럼만 생각했다면 복잡한 역사 문제도 없었을 것”이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구 교수는 이어 “중국은 정권의 성격을 불문하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내우외환(內憂外患)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줄곧 가져왔다”면서 “한반도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 했던 것도 이런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주 토요 역사강좌 안내(제5강)▼

▽일시=30일 오후 3시∼4시반

▽장소=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강당

▽주제 및 강사=‘우남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유영익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한국근현대사)

▽제5강의 이해를 돕는 책

△수정주의와 한국현대사(유영익 편·연세대 출판부·1998년) 중 이정식의 논문 ‘냉전의 전개과정과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스탈린의 한반도 정책, 1945’

△대한민국건국사(양동안 지음·현음사·2001년)

△젊은 날의 이승만-한성감옥 생활(1899∼1904년)과 옥중잡기 연구(유영익 지음·연세대 출판부·2002년)

■강좌에 관한 사항은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02-920-7089)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수강료 없음.

■지금까지의 내용은 동아닷컴(www.donga.com)'2004 청소년 역사강좌' 코너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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