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을 준비하는 청소년에게 ‘구운몽’은 여러 면에서 유익한 책이다.
우선 문학작품의 주제를 파악하는 일이다. ‘구운몽’을 읽고 나서 “이 작품 주제는 딱 이것이다”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일까.
한 백과사전에 따르면, 구운몽의 주제는 ‘인간의 부귀영화 공명은 모두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구운몽’의 내용이 이 같은 주장을 쉽사리 부정하지 못하게 한다. ‘사전적 정의’라고 할 때 생기는 무게감도 있어 더더욱 그렇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佛道)를 닦던 성진은 8선녀와 희롱한 일을 계기로 세상의 부귀를 흠모하고 불가의 적막함에 넌더리를 치게 된다. 그 죗값으로 성진은 인간 세상에 유배되어 양소유로 태어난다. 가난한 처사의 집안 태생이었으나 양소유는 마침내 대장부의 꿈을 이룬다. 직위가 승상에 이르고 두 아내와 여섯 첩을 거느린 양소유는 돌연 “인생이 어이 덧없지 아니 하리오”라며 장탄식을 내뱉는다.
그러나 작품 뒷부분에 이르면 사전적 정의는 심각하게 도전받는다. ‘봄꿈’에서 깨어난 성진이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칠 적에 육관대사가 한 말씀한다. “너는 인간 세상에 윤회하는 것을 꿈꾸었다 하는데 이것은 인간 세상과 꿈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라. 너는 아직도 꿈을 깨지 못하였도다.”
이 지적은 장자의 말을 연상케 한다. 장자가 어느 날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데, 꿈 깬 뒤에 자기가 나비 된 것인지 나비가 자기 된 것인지 도통 분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삶의 방식 가운데 어느 것이 참된 것이고 어느 것이 헛된 것이라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육관대사는 “이제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는 성진의 머리통을 내려치는 죽비 같은 말을 한 것이다.
한 연구자는 ‘구운몽’의 주제가 “(배타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집착을 버려야만 진정한 깨달음과 참다운 삶의 지평이 마련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양소유의 삶이 당대 사대부의 이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속적 출세에 대한 열망이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성진의 삶은 작품이 지나치게 통속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작가가 고안한 당의정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백과사전 식의 주제에도 타당성이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 하나로 주제를 정의할 수 없는 것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문학작품의 매력이다.
다음으로 ‘구운몽’은 청소년들에게 책 속에서나마 방황을 허락해 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비록 꿈속이었을지라도 불법(佛法)을 어기고 세속적 쾌락을 추구한 성진의 삶은 지극히 신화적 성격을 띤 방황이다. 예로부터 방황은 성장으로 이어졌다. 불행히도 오늘날 우리 현실은 청소년들의 방황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외려 단 한 번의 일탈 때문에 큰 징벌을 받을지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언어로 지어진 상상의 공간에서 주인공과 함께 마음껏 방황하고 일탈하고 저항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훌쩍 성장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마치 꿈에서 깨어난 성진처럼 말이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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