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책의향기]‘스무살…’쓴 대학생 설지인

  • 입력 2004년 6월 4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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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동아일보 자료사진

‘Carpe Diem!’ 이 야무진 여대생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이런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다. ‘오늘을 잡아라!’ 하루라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나중에 지금을 뒤돌아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서울대 외교학과 4학년 설지인씨(22)는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위해’ 대학에 입학해 맞은 첫 여름방학에 필리핀 빈민촌으로 봉사여행을 떠났다. 이후 그의 여행지는 네팔, 태국, 이라크 등 ‘험한 곳’으로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신문 국제면을 꼬박꼬박 찾아 읽었을 만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3세계의 현실을 직접 보고 싶어 해외 자원봉사를 시작했죠.”

그가 정리한 현장 기록들이 책으로 발간됐다. ‘스무 살, 희망의 세상을 만나다’(동아일보사). 가난과 싸우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 때로는 감동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전쟁 폐허에서 만난 이라크의 어린 남매 이야기도 그렇다. 50도가 넘는 폭염에 달구어진 땅바닥을 맨발로 딛고 다니던 아이들은 신발을 구걸했다.

‘여자아이가 흙 묻은 손가락으로 자꾸 아래를 가리켰다. 아이가 가리킨 것은 땅이 아니라 자기 발이었다. 좀 더 유심히 지켜보니 여자아이가 가리킨 것은 자기 발이 아니라 옆의 남동생 발이었다. 자기도 신발이 없는데 남동생의 신발을 챙기고 있는 그 누나가 순간 너무도 예뻐 보였다….’

그는 봉사현장에서 고아들을 가르치거나 황무지를 갈고 작물 심는 일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주최로 이라크에서 열린 비정부기구(NGO)회의에 참석한 것을 비롯해 국제기구 및 NGO 구호사업의 실무 현장도 가까이서 보았다.

“이젠 우리도 국제적 이슈들에 대해 생각하고 참여해야 할 텐데 아직 외국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설씨의 관심사는 제3세계의 빈곤, 난민, 그리고 인권 문제다. 그는 “이 책은 나 스스로에게 채우는 족쇄”라고 말했다. 지금의 순수한 고민을 기록으로 남겨둠으로써 나중에도 그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졸업 후 인권법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갈 계획이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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