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이창영/국민에 귀 기울여라

  • 입력 2004년 10월 14일 19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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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는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성화된 경기침체와 고실업,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와 신용불량자의 폭발적 증가는 우리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또한 반인간적인 강력 범죄의 증가와 회교 무장단체 알 카에다가 한국을 테러 대상국에 포함시켰다는 소식 등은 우리의 물리적 안전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정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정치집단 사이의 다양한 쟁론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국가 운영방식이 얼마나 커다란 부작용을 낳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충분한 역사적 비용을 치른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끝을 알 수 없는 정쟁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삶의 질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정체 내지 퇴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으로부터가 아니라 주로 정치집단 내부의 이해관계에서 생겨난 정쟁의 주제들은 일시적으로 거기에 관련된 단체들과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대립시키지만, 그것은 사회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과는 큰 관련이 없다. 이에 반해 실질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주제들은 뒤로 밀리거나 아예 제기되지도 못하고 있다. 그들은 늘 국민 모두의 보편적 이익이라고 내세우지만 그것은 곧 자신들의 사적 이익에 불과한 것으로 폭로되곤 한다.

가톨릭교회는 기본적으로 모든 정치권력은 사회의 공동선을 지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떤 정치단체든지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항상 사회의 공동선 아래서 이에 기여할 때 그 이익의 참된 정당성도 획득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는 이제 국민에게 희망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선거 때만 되면 들을 수 있는 말의 상찬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곁으로 다가가 귀 기울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창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국장·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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