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생각에는]아이가 자랄수록 자꾸 조급해져요

입력 2003-12-02 16:39수정 2009-10-1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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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이 된 첫 날, 아이들을 맡으실 새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아이들은 또 누구랑 같은 반이 되었을까. 그런 설렘으로 시작했던 3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다. 1장 남은 달력에 마음이 허전해진다.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찬바람을 맞으며 학교에 가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면 고맙고 대견하다. 내년이면 5학년이 되는 큰아이는 여자친구에게 줄 빼빼로를 고르느라 한동안 온 정성을 쏟더니, 며칠 전부터는 아직 한 달이나 남은 겨울방학 때 친구들이랑 놀이공원에 갈 건데 허락해 달라고 야단이다. 혹시나 엄마가 따라가지나 않을까 걱정까지 하는 눈치다.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정신이 번쩍 든다. 지난주 아이가 하는 영어학습지 회사 주최 어머니교실에 다녀왔는데, 이른 아침시간이었는데도 엄마들로 만원이었다. 특목고 입시 정보에, 영어대회 입상자들의 경험담이 비디오로 방영되자 모두들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경쟁자처럼 느껴졌다. 이웃집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 물어봐서도 안 된다던데….

느긋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엄마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두려움도 생긴다. 하지만 그 많은 정보를 우리 아이에게 다 끼워 맞출 수는 없는 일.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만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2주일 전,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생태공원에 갔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공원을 돌아다니느라 볼이 빨개진 아이들이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뒤에서 사마귀알집을 찾으며 신기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반짝이며 날아오르던 박주가리 씨앗도 너무 예뻤고, 소시지같이 생긴 부들이 겨울이 되어 마치 솜 같은 씨를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정말 신비로웠다. 겨울을 준비하며 견디는 자연의 지혜를 공원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공원을 찾는 새들의 먹이로 남겨놓은 새빨간 감을 보고 아이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자원활동가 선생님이 밭에서 캐어 깎아주신 시금치 뿌리의 달큰한 맛을 아이들이 오래도록 기억할까. 겨울잠을 자기 전 다람쥐가 되어 땅콩을 다섯 알씩 숨기고 찾아보았던 다람쥐놀이는 얼마나 재미있던지. 다람쥐는 열심히 숨겨놓고는 정작 어디에 숨겨놓았는지 잊어버린단다. 아이들도 공원 여기저기 나무 밑에 숨겨놓은 땅콩을 찾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한 곳에 한 알씩만 숨겨야 하는데 나중에 찾기 쉽게 한 곳에 몽땅 숨겨놓은 작은 아이는 그래서 결국 다섯 알을 다 찾아서 영악상을 받았다. 선생님께서 상품으로 사탕을 주면서 웃으며 하시는 말씀, “그러다 다른 다람쥐한테 들키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단다”.

생태공원은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놀이공원처럼 재미있는 시설도 없고,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었는데도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간 느낌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아이가 하는 말. “엄마, 생태공원처럼 재밌는 데 또 없어요?” 아이의 말 한마디에 힘이 나고, 자꾸만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스린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할 방학을 설레는 가슴으로 기다린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도 조금씩 크는 것 같다.

정혜경 서울 강동구 고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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