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사람 막지 않고
비스듬히 열어놓은 문으로
사람 사는 냄새 연신 흘리며
가는 사람에게 밥 싸주고
오는 사람에게 밥해 먹이고
강물 같은 세월에 손 씻으면서,
깊이 드는 잠 속만
갸웃갸웃하는 그 사람에겐
밥도 못 싸주고
밥도 못해 먹이고
저릿저릿한 푸른 꽃 한 줌만
마른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갸웃갸웃, 달개비꽃
깊이 드는 잠 속, 그 사람 늘 푸르다.
시집 ‘아늑한 얼굴’(랜덤하우스중앙) 중에서
열 사람에게 잘해 주어도 가슴에 끼인 단 한 사람 왜 없겠어요. 수많은 발걸음 소리 삽짝을 스칠 때마다 맨발로 달려 나간 적 한두 번 아닐 테지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살뜰히 보살피어도 갸웃갸웃 눈에 밟히는 한 사람 왜 없겠어요. 사립문 활짝 열어 놓은 대낮도 말고, 보름달 휘영청 떠오른 저녁도 말고, 꼭 ‘깊이 든 잠 속만’ 찾아오는 ‘그 사람’인걸요. 냇가며 길가며 마당귀며 달개비꽃은 저토록 무리지어 찾아오는 오월인데요, 가슴속 늘 푸르러도 함께 늙느니만 못하고말고요.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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