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김정희 '어떤 사랑'

  • 입력 2004년 8월 8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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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 마당 풀 섶에서

버마재비 한 쌍이

무아경의 내川를 건너고 있구나

소리와 빛이 잠시 멎었다

풀리며 만길 적막이 겉히자

각시가 신랑의 머리통을 아작.

어느 하늘 끝에서 소리없이 천둥 터지는구나

신랑은 參禪중

각시 입안에서 가슴 배 팔다리 바수어지는

저를 바라보고 있구나

새끼발가락 끝에서 바르르떨던

나머지 生 한 터럭마저

허공으로 사라지고

붉은 입술 각시 유유히 자리를 뜨고

大寂光殿에서 염불소리 흘러와

참선하던 자리에 고여

한낮이 깊구나

막무가내로 깊어가는구나

-시집 '산으로 간 물고기'(문학의 전당) 중에서

에이, 천하에 상종 못할 미물들 같으니라고. 이 대명천지에, 대적광전 꽃살문도 삐꺼덕 열려 비로자나불이 모처럼 실눈 뜨고 내다보시는 환한 대낮에, 하고많은 수풀 놔두고 절 마당에서 꽁무니를 맞대다니. 당장 두 연놈을 잡아 멀리 던지려다가 문득 선후를 생각하니, 이 천년 사찰의 주춧돌도 실은 저들의 보금자리를 빌린 것이렷다.

낯 뜨거운 교합이야 섭리로 친다지만 피비린내 나는 살육은 또 뭔가? 참 고약한 풍습이로고, 버릇처럼 이맛살을 찌푸리려는데 가만……. 몸을 헐어 몸을 짓는 대역사가 진행 중이로구나. 암컷 사마귀, 지아비의 헌 몸을 헐어 수십 수백 채의 새집을 짓는 중이로구나.

흠, 성냥골 하나 들지 않는 버마재비 수컷의 다비식이다. 온몸이 부서져 탄다. 뼈 한 마디도, 사리 한 알도 남지 않았다. 소리와 빛과 참선과 삶과 죽음이 한자리에 있구나.반 칠 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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