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스리랑카 누와라엘리야

  • 입력 2003년 1월 23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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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차 재배지인 누와라엘리야의 차밭 풍경. 산 정상까지 완만한 구릉을 따라 차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사진제공 월드콤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차 재배지인 누와라엘리야의 차밭 풍경. 산 정상까지 완만한 구릉을 따라 차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사진제공 월드콤
파블로 네루다(1904∼1973)는 노벨문학상(1971년)을 받은 저명한 시인이지만, 독특한 이력을 지닌 외교관이기도 했다. 1927년부터 5년간 동남아시아의 여러 곳에 영사로 재직하며 시를 썼는데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도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그곳에는 시인의 고독을 다스려줄 특별한 자연의 선물이 있었다. 바로 ‘실론 티’로 유명한 홍차였다.

● 실론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

‘그리고, 저기서/새로운 녹색의 물결처럼 솟는/오! 실론,/오! 성스런 섬이여!/내 청춘의 잃어버린 유랑의 마음이 숨을 쉬었던 상자…(중략) 재스민 향기가 어우러진 붉은 달과 물의 밤!…(중략) 그래, 지금, 과거는 지난거다. 지난 거야./빈 상자를 닫자./상자 안에는 아직도/그 옛날 바다와 재스민의 향기가 살아있다.’

네루다의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그가 실론섬(스리랑카)에서 영사로 지내며 한 일은 대부분이 홍차였던 칠레행 수출품 목록을 만드는 일이었다. 1929년 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년6개월간 콜롬보에 머물며 그는 몇 편의 시를 발표했는데 ‘실론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가 그 대표작이다.

시어로 사용한 재스민 향기는 스리랑카 여행의 중요한 코드다. 영연방 시절 실론이었던 국명이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을 지닌 스리랑카로 바뀐 것이 1972년. 망고처럼 생긴 섬인 스리랑카에서 차 재배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만5000평방마일. 인도를 제외하고는 최대의 차 생산지다. 정치상태가 안정되지 않아 최근의 정확한 통계자료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1983년 자료를 보면 그 해 스리랑카에서 수확된 차의 양은 1억8700만㎏이고 이 중 96%가 수출됐다고 한다.

스리랑카 차의 역사는 18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리랑카에서 처음 차를 재배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인인 제임스 테일러. 불과 19에이커 정도의 면적에서 시작된 차 재배는 18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약 100에이커까지 확장되었고 다른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차 재배지역은 고도에 따라 구분된다. 예를 들어 저지대는 해발 2000피트까지의 지역으로 발랑고다, 라트나푸라, 켈라니언덕과 갤리 지역이 포함된다. 중간 재배지는 2000∼4000피트, 고산 재배지는 4000피트 이상의 지역이다.

차는 재배지의 위치에 따라 가공스타일이 다르다. 이는 전적으로 차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지대에서 재배되는 차들은 대부분 중동지역으로 수출되고, 고지대 차에 비해 덜 자극적이고 액즙이 적은 편이다.

‘빛의 도시’란 의미의 누와라엘리야는 전형적인 고산지대 차 재배지. 차 문화를 테마로 한 여행에서 주요한 관광코스다. 누와라엘리야는 콜롬보 동쪽 100㎞ 지점, 실론섬의 중앙 산지인 피두루탈라갈라산(2524m)의 남서쪽 기슭, 해발 고도 1830m의 고원지대다. 기온은 13∼15도.대부분 농장 노동자인 주민은 인도 남부에서 이주해온 타밀인이 많다.

누와라엘리야는 식민지 시절 영국인이 즐겨찾던 고원휴양지다. 그런 만큼 제국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있다. 튜더와 조지아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 분홍빛 벽돌로 지어진 우체국, 박공지붕, 장미넝쿨이 있는 깔끔한 잔디밭, 이끼 낀 묘비 등 콜롬보같은 대도시에선 느껴볼 수 없었던 이국적인 풍경들이 차례차례 시선을 채운다. 힐 클럽(Hill Club)같은 휴양단지에는 골프코스, 테니스장 등 영국풍 생활방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곳의 식물원과 차농장은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로 입구부터 실론 티 특유의 차향 가득한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찻잎을 말리는 과정과 분리하는 모습, 실용적인 용기에 담는 과정까지 한 자리에서 견학할 수 있고 직접 시음할 수도 있다. 일일이 사람 손을 거치는 이 과정은 재래식이긴 하지만 실론티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훌륭한 문화체험이 된다. 누와라엘리야로 가는 버스는 콜롬보에서 거의 매시간 출발한다.

● 실론의 티타임

스리랑카에서는 설탕을 넣은 블랙티를 마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밀크, 생강 등을 더 넣어 마신다. 차가 그만큼 진하고 쓰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대개 오후 4시에서 30분간. 영국에서 유래한 풍속이다. 부호들은 차와 케이크 등을 곁들여 티타임을 갖기도 하고 이 때문에 저녁 식사 시간이 늦어진다.

차가 지금처럼 농장의 주요 재배작물이 된 배경에는 커피 산업의 침체를 가져온 1830년경의 잎마름병이 한몫했다. 그때까지는 스리랑카에서도 커피를 주로 마셨지만 전국적으로 퍼진 잎마름병 때문에 커피재배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880년대에 차 재배 실험이 성공하면서 보급이 늘어 주요 수출품목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오늘날 스리랑카 정부는 차를 홍보하고 연구하는 정부기관으로 차청(茶廳·Tea Board)과 연구센터까지 두었다. 차 청장은 차관급. 차의 생산과 판매에 관한 모든 통제는 법에 의해 다스려지고 콜롬보의 경매장에서 가격이 정해진다.

‘인도의 눈물’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스리랑카는 사실, 차 이전에 불교성지 순례지로서의 명성이 더 높은 나라다.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분쟁이 끊이지 않아 관광산업은 발달하지 못했지만 불교도들의 방문은 꾸준히 이어졌다.

섬에서 제일 큰 도시인 콜롬보는 스리랑카의 관문으로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 찾기가 쉽다. 북쪽은 포트지구로 활발한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백화점, 항공사 사무실, 기업체 사무실들이 모여있고 도시의 상징인 시계탑과 등대, 대통령궁, 식민지풍의 건물들이 있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시나몬 가든을 만날 수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세련된 지역으로 기품있고 우아한 스타일의 맨션과 나무가 늘어선 거리, 넓은 공원이 보인다. 스리랑카의 유행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쪽으로는 페타 바자 지구가 펼쳐진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만물시장이다. 온갖 종류의 과일, 채소, 보석, 금, 은, 놋쇠와 양철고물 등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유서깊은 불교사적지 캔디는 콜롬보에서 북동쪽으로 100㎞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종교유골(불치·佛齒)이 안치돼 있는 팔각형의 달라다말리가와(佛齒寺)에 가 볼 만하다. 매년 7, 8월엔 이곳에서 스리랑카 최대의 축제인 불치축제가 열리는데 화려한 장식을 한 코끼리가 등에 모조불치를 싣고 거리를 행진한다.

이정현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스리랑카에 입국하는 유일한 방법은 항공편이다. 콜롬보는 유럽, 아시아, 호주, 중동에 직항편이 닿아있는 국제관문이다. 콜롬보와 인도의 첸나이, 트리추르, 트리반드룸, 뭄바이를 오가는 저렴한 항공편을 구할 수 있다. 서울에서 스리랑카까지는 직항편이 없어서 경유 항공편을 이용해야 한다. 싱가포르 항공(02-755-1226)의 경우 싱가포르에서 콜롬보까지는 매일 1회(오후 10시40분 출발) 운항편이 있고 비행시간은 약 3시간40분 정도 걸린다. 서울에서 싱가포르까지는 6시간25분.

2. 기후와 시차

서부와 남부해안, 고산지대는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여행의 최적기는 12월부터 3월까지. 동해안은 5월부터 9월이 좋다.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3시간 30분.

2. 차 테마여행상품

실론티를 제대로 음미하는 차문화 상품은 일주일 정도의 일정으로 전통적인 차 재배지 관광이 포함되어 있다. 가격은 약 195만원. 전문여행사로는 한인여행사(www.hanyin.net), 투어클럽 21(www.tourclub21.com) 등이 있다. 스리랑카대사관(www.srilankaembassy.or.kr, 02-735-2966)에서 여행의 기초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실론티에 관한 정보는 한국 차문화 협회(www.koreatea.or.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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