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교수 웃음의 인생학(9)]'통곡헌'이라 집이름 단 까닭은…

  • 입력 2002년 10월 31일 18시 09분


허풍이 그렇듯이 허풍 웃음 이야기도 많아지면 사람 실없어진다. 배꼽 떨어질 만큼 웃었으니, 다시 또 비수를 머금은 웃음으로 되돌아가자.

홍길동의 저자, 허균의 문집에 ‘통곡헌기’(慟哭軒記)란 글이 있다. 조카가 새 집을 짓고는 ‘집 이름’을 나무 판자에 새겨서 추녀에 걸었는데 하필이면 ‘통곡헌’이다. 집 이름이 굳이 ‘통곡하는 집’이라니! 세상에 별일도 다 많다.

당대 사람들도 다들 조롱하고 비웃고 했다.

‘정신 나갔나! 그래 너나 실컷 통곡하고 발광해라!’

이런 투로 조소(嘲笑)했다.

그럴 수밖에….

부모가 돌아가셔야 통곡하는 법이고 남편을 여읜 아내라야 통곡하는 법인데, 이렇지도 그렇지도 않은 멀쩡한 사람이 집안에서 노상, 밤낮도 없이 통곡하며 지나겠노라고 공언하는 셈이 되었으니 욕 들어 싸다.

비웃는 사람이 너무많았다. ‘미친 녀석, 별 놈 다 보겠네. 울다 울다 울음에 체해서 죽어버려라!’ 이렇게 빈정대고 코웃음 칠만도 했다. 제가 살 집의 추녀에 걸 편액이면 희희락락헌(嬉嬉樂樂軒)까지는 안 가도, 최소한 ‘희락헌(喜樂軒)’, 아니면 희소헌 (喜笑軒)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구태여 ‘울음 집’이라니!

이에 대해서 허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사는 문란하고, 관원의 행동은 교만해 가고 있다. 의견이 다르면 서로 칼을 들이대고 어진 이들은 모두 막힌 굴속 같은 세상에서 허덕이다 못해 밖으로 도망칠 생각들만 하고 있다. 그게 바로 지금 세상 되어 가는 꼴이다.

다들 양식 있는 사람이면 굴원(屈原)이 그랬듯이 바위를 지고 강물에 몸을 던져야 하는데내 조카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함을 스스로 통곡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이여 내 조카를 비웃지 말라!’

오늘 우리들 가운데 누가 감히 비웃을 수 있을까? 자기 집에 통곡헌의 편액을 달고 싶은 사람이 사뭇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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