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국민학교' 친구의 수필집

  • 입력 2002년 6월 27일 16시 28분


지난 주말, 고향인 강원도 철원에 다녀왔다. 일년에 겨우 두세 번밖에 못가는 곳이 되었지만 눈에 익은 산과 들, 보고싶은 친구들, 그리고 동네 어른들이 언제나 따뜻이 맞아주는 고향, 바로 내 고향이었다.

철원 동성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단짝 친구였던 춘명이가 어렸을 때 추억을 엮은 에세이집을 썼다. 이번 고향 나들이도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어서 다른 때보다도 가벼운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오랜만에 모인 스무명의 친구들과 40년전, 코흘리개 꼬마 시절 얘기를 나누다보니 모두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는 듯한 환상이 들었다.

차돌을 주어다 반질반질한 단면에 반공구호며 여러 가지 덕목들을 써서 화단을 장식했던 일, 학교 근처에 매설된 불발탄이 많았는데도 천방지축 뛰어놀다가 잘못 건드려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업고 뛰어가던 선생님 모습, 백마고지탑 근처에서 치고 박고 싸우기도 하고 하얀 고무공을 축구공 삼아 우리들만의 월드컵을 벌였던 일까지…. 철마다 화려하게 변신하는 금학산의 사계 또한 언제 떠올려도 머리 한 구석을 맑게하는 추억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근광이와 부일이가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는 비보를 접했다. 영춘이는 풍을 맞아 병석에 있다고 했다. “벌써 사그라질 나이는 아닌데… 하느님도 무심하시군.”

올 추석에 고향에 다시 돌아가면 땅 속 친구들을 찾아 소주 한 잔이라도 건네고 이승의 고단했던 짐을 벗고 천국에서 편안히 살기를 기원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절로 눈물이 고이려 해 푸른 하늘로 눈을 쳐들어 보니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뭉게구름이 다시 눈빛을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인생의 정점을 지나 후반을 뛰고 있는 우리들. 하지만 춘명이가 숨겨져 있던 문재(文才)를 발휘해 훌륭한 수필집을 펴냈듯 서로 용기를 주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최종덕(53·사업·서울 강남구 도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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