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28년만에 만난 남자친구

  • 입력 2002년 4월 18일 14시 47분


해마다 봄이 되면 고향을 떠나오던 1969년의 꽃샘추위를 떠올리곤 한다. 여고를 졸업하던 그해, 나는 서울세관에 취직되어 야간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정든 고향 경북 경산을 뒤로 한 채 낯설고 물선 서울에서 보낸 첫 봄. 효자동 이모님 댁에서 출퇴근하던 그해의 봄은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 생각, 군에 가 있던 오빠 생각, 중학생이던 어린 동생 생각에 더욱 춥게 느껴졌었다.

고향 생각에 긴 밤을 뒤척일 때면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에게 가끔 편지를 쓰곤 했다. 고향에서 그의 아버님과 나의 아버지는 함께 경찰로 근무하셨고 어머니들끼리도 ‘형님’ ‘아우’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대구에 있던 그가 군대에 가버리고 1974년, 우리 가족들이 모두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고향 생각은 자연히 멀어져 버렸고 그와의 연락도 끊어졌다.

군인 남편의 아내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열심히 살면서 잊고 살았던 그의 소식이 다시 궁금해진 것은 지난해 10월,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다가 우연찮게 그의 연락처를 알고 난 뒤였다.

연락을 해보기로 하고 용기를 냈다.

“○○씨 계세요? 저 이선애라고 하는데요.”

“하하, 다른 이름은 다 잊어도 그 이름은 안 잊지….”

낯익은 옛 친구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28년 만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우리는 서로가 사는 중간지점인 구미역에서 만났다. 2시간 동안의 점심 시간은 28년의 긴 추억을 더듬기에는 너무 짧았다.

돌아가는 기차를 타려는 내게 대고 그는 “우리 또 28년 뒤에나 만나게 되는 거니?”라며 웃음 섞인 농담을 건넸다. 다음 약속은 영천에 살고 계시는 그의 어머님과 서울에 계시는 우리 어머니와 함께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친구와 함께한 시간은 정말 따뜻했다. 이제는 해마다 봄이 되면 고향의 상징같은 존재인 이 옛친구를 다시 만난 2002년의 봄, 영상 24도의 따뜻한 4월의 햇살을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이 선 애 52·주부·대전시 동구 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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