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이승재기자의 테마데이트]프리 토크

  • 입력 2002년 4월 4일 14시 30분


이〓미국의 팝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는 남녀의 모습을 담은 만화의 한 컷을 빌려온 그림이 있죠. 작품에 달린 긴 제목을 읽노라면 선생님과 제가 대화 중 경험하는 감성적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해요. 읽어드릴까요?

앙〓플리즈.

이〓‘We Rose Up Slowly…As If We Didn’t Belong To The Outside World Any Longer…Like Swimmers In A Shadowy Dream…Who Didn’t Need To Breathe…(우리는 천천히 일어났다…마치 외부 어떤 세계도 아닌 특별한 세계에 속한 것처럼…몽롱한 꿈속을 헤엄치는 사람들처럼…숨쉴 필요도 없는…).’ 마음에 드세요?

앙〓아아. 환상적이고 철학적이에요. 위 로즈 업 슬로리….

이〓제 키가 173㎝고요. 턱선은 희미하고 살이 올라 얼굴 윤곽선이 나타나지 않고요. 윤기 있는 피부. 성격적으로는 상당한 열등감에 시달리는데 이게 창작의 에너지가 되고요…. 만약 이런 제가 선생님의 손님이라면 어떤 컨셉트로 의상을 디자인해 주시겠습니까?

앙〓네네. 우선 프로페셔널하고 인털렉추얼(intellectual·지적인)한 저널리스트시잖아요? 그런 상식적이고 스탠더드(standard·모범)한 분위기와 이 기자님의 캐릭터가 조화를 이뤄야죠. 조직에 몸담고 계시니 차이니스 칼라보다는 테일러드 칼라가 좋겠고요. 실루엣은 클래시컬해야죠. 팻(pad·패드)을 조금 넣어 어깨가 넓은 듯 보이면 캐주얼하지 않고 위엄 있어 보이거든요? 배가 약간 있으시니 허리는 피트하게…. 얼굴이 굉장히 동안(童顔)이시거든요? 베이비 페이스. (웃음) 게다가 피부가 맑고 투명하고 깨끗하시니까, 슈트는 네이비 블루나 검은색처럼 강인한 색상이 이 기자님의 부드러운 느낌을 캐머플러지(camouflage·위장)시켜줄 걸로 상상되거든요?

이〓와이프도 저에 대해 “얼굴이나 성격이나 참기 힘들 만큼 우유부단하다”고 하죠.

앙〓그러나 알고 보면 굉장히 철학적이고 지성이 시각적으로 가득 찬 분위기시거든요? 예리하고 사람을 아주 꿰뚫어보는…. 그런 분들은 가볍고 일그러진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상처 받죠.

이〓네엣?

앙〓사람이 좋아 보이니까 마음을 놓고, 긴장하지 않고, 어떤 교양도 없이, 버릇없이 굴지도 몰라요. 그렇죠?

이〓상처는 좀 받죠….

앙〓굉장히 실수하는 거죠. 그들은 이 기자님 생각의 바운더리 밖으로 떨어져 버림 받으니 굉장히 슬픈 일이 탄생하는 거죠. 맞죠? 그렇죠? 겉으론 좋게 대해 주시겠지만 속으론 ‘아아, 저건 너무 버릇없고, 교양없고, 바보같이 텅 빈 사람이다. 다시 상대할 사람이 아니야’ 하고 생각하죠. 쉽게 보이시지 않으려면 슈트 상의는 뒤를 트지 않는 것이 좋아요.

이〓예?

앙〓뒤를 트면 ‘패셔너블하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잘못이에요. 지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특히 양쪽을 튼 것은 굉장히 안 좋아요. 좀 플레이보이 기질을 지닌 분들이 그렇게….(웃음)

이〓007 제임스 본드도 흔히 양쪽을 트죠.

앙〓그럼요. 플레이보이니까요. 그렇죠? 머리도 약간 기르세요. 아티스트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계시잖아요? 리터레이처(literature·문학·리터러처)도 아트(art)에 들어가지 않나요? 그렇죠?

이〓서울의 한 성인나이트클럽은 남녀를 즉석에서 짝지어 주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앙〓아아, 가만있자. 그걸 뭐라고 부르는데…. 아아….

이〓부킹이요.

앙〓아아, 맞아요. 부킹.

이〓그곳 화장실에는 업소에서 붙여놓은 ‘부킹 7계명’이란 게 있어, 술에 취한 남자손님들에게 깨달음을 주죠. 그 ‘7계명’은 이렇습니다. ①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정중히 자기소개 및 인사를 한다) ②상대를 예우할 줄 알아야 한다 ③먼저 편안한 자리를 양보한다 ④상대가 무슨 술을 마시고 있는지 묻고 거기에 맞는 술잔을 권한다 ⑤부킹 상대로 예쁜 여자를 고집하면 실패한다 ⑥무례한 농담 및 지나친 표현은 금물이다(상대가 적대감을 갖는다) ⑦오늘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말자(기회는 또 온다).

앙〓아하하하(웃음).

이〓선생님이 평소 강조하시는 내용들, △상대를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며 △자기를 절제하고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일로매진하는 자세가 집약된 느낌이죠. 선생님, 좀 저질인가요?

앙〓아아, 아녜요. 요즘 많이들 상식적으로 하잖아요, 그거(부킹). 사회적으로 좋은 문화로 자리잡고 있진 않아도, 분명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데 무시할 순 없죠. 그런 곳에서 남녀를 짝지어주는데, 그게 무질서하고 불륜의 관계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그 순간 재미있게 같이 대화하고 춤추고 술 마시고 노는 것으로써, 지나치게 그 이상을 기대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적대감과 실망을 줄 거라는 그런 뜻이 참 마음에 들어요. 오히려 그런 혼돈스럽고 일그러진 문화 속에서도 질서와 예의에 대한 의식이 존재한다는 걸 참 다행으로 생각하죠.

이〓저의 아름다운 처형이 부산시립교향악단 비올리스트인데요. 그녀가 프랑스 작곡가 G 피에르네의 ‘하프를 위한 즉흥적 카프리스’ 중 메인 테마를 보내왔습니다. 선생님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며…. 여기에 제가 가사를 붙였죠. ‘내적 아름다움의 전도사’인 선생님께 제가 이 음악적 모티브를 드립니다.

(악보)

앙〓아아아….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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