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현장칼럼]공부 잘하는법

  • 입력 2002년 11월 28일 16시 11분


‘공부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의 수업풍경./신석교기자
‘공부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의 수업풍경./신석교기자
서울시교육청은 98년 획일적인 암기식 교육을 막는다는 취지로 초등학교에서 치르던 객관식 지필시험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이후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들 중 일부는 난생 처음 치르는 중간·기말고사에 맞닥뜨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겼다. ‘영어 수학 점수를 어떻게 하면 올릴까’ 하는 전술적 고민 이전에 ‘도대체 시험공부는 어떻게 하는 걸까’ 하는 근본적 고민에 빠지는 것.

이런 틈새시장을 노리고 ‘공부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상위 1% 학습법’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4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문을 연 한 학원을 찾아 20∼22일 밀착 취재했다. 이곳 수강생 100여명은 도곡동 대치동 개포동 등에 사는 중학생이 주류이지만 중계동 방학동 등에서 오는 경우도 있었다.

●단원-장-절-소제목을 외워라

“단원 제목은?”(강사 방모씨)

“‘힘.’”(학생)

“장 제목은?”(강사)

“‘힘의 합성.’”(학생)

“절 제목은?”(강사)

“‘어떻게 하면 두 힘을 비교할까.’”(학생)

“소제목은 책에 없구나. 어떻게 잡아봤지?”(강사)

“‘평행’과 ‘평행의 조건’으로요.”(학생)

“내용을 설명해 볼까?”(강사)

주 3일반 학생들의 경우 오후 4시반∼6시, 이틀치 예·복습관리를 받는다. 강사가 칠판에 학생들 이름을 적은 후 학생별로 ‘복습과목’과 ‘예습과목’을 나열한다. 학생들은 수행평가 등으로 진도를 나가지 않은 교과목을 ‘복습과목’ 목록에서 지운다. 복습 예습을 즉석에서 하면서 과목 하나하나 강사의 확인을 받은 학생은 칠판에 쓰인 그 과목명에 ×표를 친다. 자신의 예·복습 목록표에 모두 ×표가 쳐진 학생들만 강의실을 떠날 수 있다.

학원에서는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 근본 원인을 ‘자신이 뭘 외우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내용의 위계구조만 알아도 이해와 암기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학부모 중 일부는 공개강의 때 학원장이 “1등 하는 아이들은 책을 술술 넘기면서 밑줄을 안 그어도 다 외웁니다. 비법이 뭔지 아십니까?”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감동 받았다고 했다.

학생들은 학원에서 나눠준 ‘예복습 관리표’의 단원, 장, 절, 소제목란에 각기 빨강, 초록, 파랑, 검은색 볼펜으로 내용을 채운다. 단원→장→절→소제목 순으로, 또 그 역방향으로 외우는 연습을 한다. 제목 앞에 써있는 약물이 ‘Ⅳ’인지(단원), ‘4’인지(장), ‘⑷’인지(절), ‘④’인지(소제목)를 눈여겨보면서 외우는 내용의 ‘위치지도’를 머릿속에 그리는 작업에서 시작, 교과서를 통째 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부 학생은 학원에서 귀가 닳도록 반복 강조하는 내용을 혼자 중얼거렸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의 시험범위는 ‘한 단원’, 공부 못하는 학생의 시험범위는 ‘100쪽’.”

학원에선 “이 학원만 몇 개월 다니면 선행 학습을 하는 학원들은 전혀 다닐 필요가 없다. 아이의 자생력이 길러진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영어 수학 학원을 다니면서 이곳을 ‘옵션’삼아 다닌다. 월 48만원을 내고 월-수-금 반에 다니는 김모군(13·D중 1·강남구 도곡동)은 △영어 수학 대학생 과외(주 2회씩) △국어 과학 학원(주 2회씩) △체육시험에 대비한 체육학원(주 1회)을 병행하고 있다. 김군은 “당장 효과를 봤다고 하긴 어렵지만 손해볼 것은 없지 않느냐”고 했다. 국어 학원과 병행한다는 이모군(D중 1)은 “시험에 임박해 벽을 쳐다볼 때 외운 게 떠오르지 않으면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이곳을 다닌 뒤 외우는 게 편해졌다”고 했다. 학원생 수준에 대해 학원측은 ‘상중 그룹’이 5분의 2, ‘중하 그룹’이 5분의 3이라고 밝혔다.

●시험공부도 시(時)테크

예·복습 과정이 끝난 학생들은 오후 6시, 대형강의실로 옮겨 학원장의 ‘공부전략’ 강의를 듣는다. 20일은 ‘시험공부 계획표 작성시 시간 배분법’ 강의가 진행 중이었다.

“앞으로 기말시험이 며칠 남았다? 20일 남았다. 그러면 공부할 시간은 얼마 남았다? 20일 곱하기 24시간 해서 400시간이 넘는다? 아니지. 곱하기 3하면 60시간밖에는 남지 않았다니까. 12과목으로 나누면 과목당 5시간도 남지 않았다니까. 여러분들, 일단 책상에 앉아 아무 과목이나 30분 정도 책보다 보면 머릿속에 떠올라. ‘아, 국어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국어도 하고 사회도 하고 뒤죽박죽 하다보면 책상에 책이 이만큼 쌓여, 이만큼. 그러면 여러분들 생각하지? ‘아,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하고. 그래서 계획표를 짜. 그리고 계획표 짜느라 수고했다며 그 날은 또 쉬어….”

고개를 끄떡이는 학생들에게 원장은 ‘일일 종합 계획표’와 ‘과목별 계획표’를 나눠주며 다음 순서로 시험공부 시(時) 테크를 설명했다.

①예복습 시간과 다른 학원에 가는 시간 등 고정 시간 외 공부 가능 총시간을 계산한다.

②과목별 난이도를 구분해 가중치를 계산한다.

③공부 총시간에 과목별 가중치를 곱해 과목별 투자시간을 계산한다.

④과목별 투자시간을 과목별 범위(주로 과) 단위로 나눠 과목별 과당 투자시간을 낸다.

⑤과목별 과당 투자시간이 나오면 다시 △5분의 3은 이해·기억 작업 △5분의 1은 문제를 스스로 출제하는 작업 △5분의 1은 총평가(정리) 작업으로 세분한다.

⑥과목별로 ‘이해·기억작업’ 이후 이틀 뒤 ‘문제 출제 작업’을, 그 이틀 뒤 ‘총평가 작업’을 분산 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공부 내용이 주기 반복되도록 시간을 배분한다.

⑦하루 중 1시간, 일주일 중 하루는 여백시간으로 두어 계획이 실패할 경우 보완한다.

학생들은 이 밖에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기 위한 기초 단계로서 ‘초인지전략 훈련’으로 명명된 프로그램을 거치고 있었다. 다음 항목에 책을 보지 않고 답을 써넣는 것. △해당 단원의 제목은? △장의 제목들은 몇 개? △단원 개요 주요 내용은? △장 제목들을 적어보시오.

학생들은 글을 빨리 읽기 위한 기능성 훈련도 병행한다. 안구 운동을 통해 안력, 시점, 시폭, 시야를 확대하기 위한 ‘일일훈련 점검표’를 작성한다. ‘위인전의 경우 시대적 배경→어린시절→성장과정→고난→업적활동 나열→사망의 패턴을 밟는다’는 식으로 글 종류에 따른 내용 패턴을 외움으로써 이해 속도를 높이는 훈련도 받고 있다.

‘습관 전략’이라 하여 공부방 환경도 점검한다. G중 1학년 정모양(13·강남구 대치동)의 ‘공부방 점검표’ 중 일부.

①집중에 문제는 없나?〓곧 이사간다고 해서 아주 지저분하다

②공부방 배치는 누구 주도로?〓엄마

③불편한 점은?〓책장이 부족해 책상이 어지럽다

④책상 위치는 2면이 벽으로 막혀야 하며 방문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나의 경우는?〓벽이 2면을 막고 있으나 창문이 좌측 뒤에 있다

⑤꼭 개선할 사항은?〓책장과 책상 사이 거리를 넓힌다

⑥개선 후 기대효과?〓집중력 재고

●어머니의 쪽지

21일 오전 10시반, 학원 소강의실에서는 학부모 5명을 대상으로 ‘어머니 클리닉’이 진행되었다. 외부 전문강사는 “어떤 어머니가 무식한 어머니이고, 어떤 어머니가 신지식인 어머니입니까? 결과는 어머님들 손에 달려있습니다”면서 지난 한 주 동안 자녀들에게 어떤 ‘긍정적’ 행동을 했는지를 점검했다.

“매일 밤 11시 반에 성철스님의 독송집을 읽으며 아이와 108배를 함께 했어요. ‘바른 마음으로 집중해 공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함께 소리내어 기도했어요.”(학부모 이모씨)

일부 어머니들은 다음과 같은 메모를 적어 아이 책가방에 넣었다고 했다.

‘Dear ○○. 드디어 발견했구나. 공부가 재밌다는 걸. 지식은 단물이야.’

‘사랑하는 아들 ○○아. 예습 복습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 속으로 흐뭇했단다. 엄마는 ○○가 주어진 시간 관리를 잘하면 원하는 일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강사는 “습관이 문제입니다. 오늘부터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세요. 반찬을 먹을 때는 멸치 몇 개를 한 번에 집는지, 잘 때는 왼쪽으로 눕는지 오른쪽으로 눕는지…. 습관이 인생을 만듭니다. 공부도 그 중 하나죠”하고 강조했다.

학부모 이모씨는 “다른 학원을 모두 끊으니 시험 직전 마무리 총정리 수업이 없어져 중간고사에서 12점이 떨어졌다”면서 “아이가 공부습관을 기를 때까지 몇 개월 더 밀어주고 나서 학원 ‘뺑뺑이’를 다시 시킬 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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