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평론가 김윤식교수 고별강연록 전문 -2

  • 입력 2001년 9월 13일 16시 59분


3. <역사의 끝장>과 그 징후 읽기 헤겔주의에 기초를 둔 이러한 근대관이 얼마나 도식적이고 일방적이라는 것을, 공부가 모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덤비던 세월 속에서 제가 크게 당황한 시기가 도래했는데, 구소련 붕괴 (1989) 사건이 그것입니다. 역사란 자유의 자기 실현(전개)이라는 헤겔의 처지에서는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다시 헤겔을 읽어보는 길밖에 제가 할 일은 거의 없었지요. 두루 아는 바와 같이 세계사의 중심점에서 벗어난 방관자적 처지(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된 뒤에야 나는 것이거니와)에 섰던 헤겔은 나폴레옹의 예나 공격에서 역사의 끝장을 보아버렸지 않았던가. 유럽 전체가 자유로 뒤덮혀졌으니까 더 전개될 정신은 없었던 것이지요.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 바타이유 등을 길러낸 헤겔의 직계 A. 코제브는 어떠했던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그는 역사의 끝장을 보고 있었지요. 자유주의적 이념의 승리에서 세계사는 더 나아갈 데가 없었던 까닭. 그 손주격인 F. 후쿠야마는 구소련 해체에서 비로소 역사의 끝장을 보고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역사의 끝장 이후의 인간은 어떤 인간형이어야 하는가. 이 물음이 중요한데, 따지고 보면 헤겔에서 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욕망)은 위신을 위한 싸움(Prestigekampf)에 있다는 것. 이 욕망이 주인·노예 변증법의 핵, 그러니까 역사 전개의 힘의 원천을 이루는 것인데 역사의 끝장 이후의 인간이란 이것이 결여된 인간이라는 것. 그렇다면 그것은 다만 짐승스런 존재에 가까운 그 무엇이 아닐 것인가. 코제브는 물질적 삶을 즐기는 미국인을 염두에 두었고, 뒷날엔 스노비즘(형식주의)에 떨어진 일본인을 암시해 놓고 있었지요. 그렇다면 후쿠야마는 어떠했을까. 매우 신중하게도 그는 의문 부호를 달아놓더군요(최근 그는 최신 DNA 이론을 동원 『대붕괴 신질서』(1999, 국역)를 내놓았다). 그 이유로 핵무기를 갖추고 있음을 내세우고 있더군요. 요컨대 역사가 끝장난 것이라면 그 이후의 인간형은 어떠해야 하는가. 근대의 종언과 이는 얼마나 같고 또 다른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난무하는 시대성 속에서 지금껏 근대 문학에 매달려 문학의 근대적 성격에 골몰하던 저같은 사람은 어떻게 방향 설정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절벽 앞에서 빛을 찾는 길은, 다름 아닌 제가 전공한 문학, 곧 근대 문학 속이었지요. 당초 하늘의 별이 내가 갈 수 있고 또 가야할 길의 지도몫을 했듯, 내가 전공한 근대 문학이 이번에도 지도 노릇을 해줄 수밖에. 다른 무슨 방도가 따로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번의 경우 그 근대 문학이란 과거 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이 나라 문학의 근대적 성격 해명(체계화된 해석)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바야흐로 씌어지고 있는, 이른바 당대(현대)의 문학 읽기가 그것. 이때부터 저는 문단에서 발표되는 중요 작품을 거의 모조리 읽는데 힘을 기울였지요. 제가 비평가로 데뷰한 이래(1962) 월평도 자주 쓰긴 했으나, 그것도 한갓 여기(학문 연구를 위한 보조 수단, 감수성 개발)였지만 이번엔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길찾기였던 만큼 필사적일 수 밖에요. 어째서 그러해야 했던가. 이 물음은 문학 작품, 그 속에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작품이란 무엇이겠는가. 작가가 쓰는 것이 작품이기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가에 귀속되는 것 아닙니까. 저작권의 근거도 여기에서 나오지요. 동시에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초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대적 무의식의 반영이 그것이겠는데, 이는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집단 무의식이라 부를 제3의 영역이 아닐 수 없지요. 그동안 제가 읽어온 과거형, 이 나라 근대 문학은 그 시대적 무의식이 놓인 자리가 뚜렷했는데,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의 명제로 요약되는 것이 그것. 인간의 위엄에 어울리는 문학, 그것이겠지요. 일제 강점기의 모든 저항 문학, 60·70년대의 분단 문학, 80년대의 노동문학, 다시 요약컨대 <민족 문학=민중 문학>이었던 것. <위신을 위한 싸움>을 전제로 한 주인·노예 변증법의 틀이 거기서 은밀히 작동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러한 과거형 문학에 대체되는, 현재형의 새로운 문학이란 어떠해야 할까. <인간은 벌레(메뚜기, 연어, 되새)다!>의 명제로 정리되는 그 무엇. 윤대녕의 [은어낚시 통신](1994)이 나왔을 때 직감적으로 제가 잡은 감각은 바로 위의 명제였지요. 역사의 끝장 이후의 문학이란, 그러니까 위신을 위한 싸움을 포기 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인간형으로 정의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생물학적 상상력이었지요. 물고기나 철새 모양 인간도 한갓 생물의 범주에 든다는 것. 그것도 모든 생물 그것처럼 신비로울 정도로 섬세하고, 난해하며, 또한 아득한 존재물이라는 것. 생물학적 상상력이 논리를 초월하는 대목은 연어의 모천 회귀를 신호로 태양 컴퍼스에 따른 철새의 이동 감각에서도 엿보였으며, 이 낯선 상상력이 신화적 상상력 속으로 넘나들고 있지 않겠는가. 이에 비할 때, 역사의 끝장 의식에 당황하는 이 나라 작가들의 고민에 가득찬 수많은 <후일담계> 문학도 이 신비스런 상상력 앞에서는 한동안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지요. 여기까지가 제가 읽은 현재의 문학 읽기의 첫번째 단계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어디쯤이었을까. 대붕괴와 잇단 혼란 속으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 '과연 <인간의 벌레다!>일까'가 그것.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임엔 틀림없지만 또한 벌레가 아님도 사실이 아닌가. 이 물음과 더불어 던져진 것이 사이버 세계(가상 진실)의 지구 규모적 등장입니다. 이 사이버 세계의 전개가 그동안 제게 익숙해온 활자 세계에 던진 충격은 역사의 끝장 의식 그것에 맞먹는 그런 것이었지요. 이에 대처하는 방도 역시 제가 익숙해온 문학 거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요. 현재형 작품 읽기를 조금이라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작품 속에 그에 대한 해답도 응당 들어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 그동안의 과거형 활자 문학이란, 명제화한다면 <인간은 동물이다!>로 정리되고 있지 않았을까. 살아서 움직이며 이곳 저곳으로 공간적 시간적 이동의 분량 확보에 성공한 문학이었던 것이니까. 활자가 시공의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함이 이를 증거하지요. 사이버 공간의 등장은 무엇보다 시공의 제약에서 자유롭습니다. 이에 맞서기 위한 활자 문학이 <인간은 식물이다!>로 전환될 수밖에. 사이버 공간이 시·공을 초월한 무차별성으로 규정되고 군림하는 것이라면, 활자 문학이란 시·공간에 제약됨을 본질로 하는 것, 동시에 어쩌면 그로써 존재 근거를 삼았던 것. 이에 주목한다면 이 사정이 쉽사리 이해될 수 있겠지요. <인간은 식물이다!>의 명제로서 활자 문학의 영역을 직감한 순종 한국인으로 시인 김지하씨를 들어도 되겠지요. 씨가 6년여에 걸친 옥살이에서도 자유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식물적 상상력에서였던 것. 바람에 날려온 민들레 씨앗이 녹슨 감옥 창가에 착근하여 싹을 틔우는 놀라운 장면을 씨는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기에 어떤 사변적 세계와도 구별되는 생물학적 확실성이었지요(『예감에 가득찬 숲그늘』). 그 민들레에서 황금빛 꽃이 필 수도 있을 것인가. 이 물음에 나름대로 모종의 해답을 보여준 시인으로 이번엔 김춘수씨를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유아론(唯我論)에 빠져 허우적대던 전후 시단 김수영, 김종삼, 김춘수 등이 4·19를 고비로 각각 유아론(난해시)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길을 톺아가지 않았던가. 의미의 시란 이름으로 김수영이 먼저 돌파해 나갔고, <내용없는 아름다움>을 향해 나간 쪽은 김종삼이었지요. 이 틈에 낀 김춘수가 이런저런 곡절을 겪으며 도달한 곳은 어디였을까. 꽃없이 번식하는 은화식물, 포자(胞子)로 번식하는 버섯류의 상상력이었던 것(『김춘수전집(2) - 시론집』) 여기까지가 역사의 끝장 이래 제가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 헤맨 과정의 대강의 표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 모색에서 제가 취한 행위가 활자 문학의 방식 그대로의 속성에 따랐다는 점에 주목해 주십시오. <현장 비평>에 쉴새없이 매달렸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4. <징후 비평>의 어떤 표정 방향 모색의 행위란, 그것이 작품을 통해 이루어지는 방식이란 어떠해야 적절할까. 제가 징후 비평이라 이름붙이고, 이런 분야의 한 가지 스타일을 모색한 것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문학 고유의 방식에서 말미암았기에 지극히 문학적인 행위에 속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방식은 두가지였는 바, 그 하나는 작품 읽기와 그것에 대한 글쓰기가 그것. 작품을 읽기란 무엇인가. 작가의 의도 읽기와 시대적 집단적 무의식 읽기로 이를 정리할 수 있겠지요. 어디까지가 작가의 의도적 측면이며 또 아닌가. 어디까지가 집단적 무의식 영역인가를 판가름하기란 쉬울 턱이 없지요. 서로 섞여 있어 구별 불가능 영역일 경우가 대부분인 까닭. 이를 저는 <그것이 모종의 징후로 존재한다>고 생각해 오고 있습니다. 이 모종의 징후란 어떤 경우에도 명시적일 수가 없습니다. 징후적인 것의 포착이란 또다른 징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작품에서 스며나오는 모종의 징후를 또다른 징후로 포착하여 존속시켜 놓기가 그동안의 제 작업이었습니다. 쓰기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혹은 결코 포착되지 않는 징후인 까닭. 따라서 읽기만 하고 쓰지 않음이란 무효인 것. 이것이 제가 찾아낸 방식이자 방법이지요. 저만의 독창성이 있다면 바로 이 점에 있겠고 공적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이겠지요. 사람들은 이를 두고 현장 비평이라 불렀지만 제 쪽에서 보면 <징후 비평>에 불과한 것입니다. 징후에서 징후에로 건너 뛰기, 실상 이것은 제가 문학에서 배운 기술일 뿐, 무슨 독창적 발견일 수 없지요. 원인을 잘 모르는 병자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고안해낸 가장 그럴법한 방식의 하나가 예술이라면, 그리고 문학도 그 중의 하나라 가정한다면, 이 문학쪽이 지닌 고유성에 제가 기댔다고 봄이 좀더 사실에 가까울 터입니다. 제가 포착한 징후들, 가령 생물학적 상상력도, 민들레 씨앗론 및 포자론도 단지 이 징후 비평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징후를 포착하는 방식이 그것. 사람들은 이를 글쓰기의 스타일이라 부르겠지만 제 처지에서 보면, 스타일이기에 앞선 그 무엇, 요컨대 징후 보존·유지를 위한 필사적 행위라고나 할까요. 제 징후 비평을 두고 사람들은 <흥, 멋대로군> 또는 <자유자재로군>이라고 하기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놀고 있군>이라고들 했습니다. 응당 그런 비난을 받을 만했음도 사실이었을 터. 그렇지만 제 처지에서 보면, 거듭 말하지만 필사적이었습니다. <습니다체>는 물론 주·객의 대화체, 비평가·문학사가의 대화체로 넘나들기도 했고, 논문식 문체와, 심지어 묘사체조차 넘나들기도 한 것은 오직 징후 읽기와 그 징후 표현을 위한 길찾기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니까. 잘 모르긴 합니다만, 헤겔에 맞서 헤겔의 동일성론을 격파하기에 온 힘을 쏟은 『부정 변증법』의 저자 아도르노 역시 이와 비슷한 국면에 한동안 서있지 않았을까.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가 씌어진다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그가 말했을 때 그때부터 그의 글쓰기는 적어도 종래의 철학적, 논리적 문체일 수 없었던 것. 『부정 변증법』 조차 한갓 수필식으로 묘사되었음은 이를 증거함이 아닐까. 논리로써 논리를 격파함이란 기껏해야 동일성 이론에 함몰되고 만다는 사실을 그는 간파하고 있지 않았을까. <작가는 나의 스승>이라 공언하면서 징후 비평이란 것에 딴엔 제법 온 힘을 쏟은 모양인데, 그러다 어느새 20세기가 끝장나고 21세기에 서슴없이 접어든 오늘에 와서 그대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무슨 그럴싸한 모종의 소식이라도 들려 왔던가. 이렇게 제게다 묻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가만히 그 사람의 손을 이끌고 제가 글쓰고 있는 현장을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여기는 제 글쓰는 곳, 서재랄 것까지 할 수 없다 해도 보다시피 제법 종이책들이 가득 벽과 바닥에 널려 있습니다. 이를 두고 『존재와 무』(사르트르)의 사팔뜨기 철학자는 공동 묘지라 했지요. 그 서재 주인이란, 그러니까 묘지기에 더도덜도 아닌 존재. 시체들로 가득찬 공동 묘지에서 이 묘지기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죽은 자에게 자기 몸을 빌어주기에 다름 아닌 것. 자기의 뜨거운 피와 입김을 시체에다 접속시켰을 때, 미라 상태의 시체에 피와 생기가 돌고 드디어 그 입김이 살아남이란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얼마나 그로테스크한가. 얼마나 처절한가. 묘지기로서의 제 모습이 거기 있습니다. 시체에다 몸을 빌어주고 있는,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 기괴한 제 모습이 거기 있습니다. 묘지기를 조롱하며 스스로 묘지기임을 거부하고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존재와 무』의 저자가 취한 방식이란 무엇이었을까. 잘 모르긴 하나 글쓰기를 실탄이 장전된 총이라 보고, 이른바 앙가즈망 문학으로 치달은 것은 혹시 아니었을까. 그럴만한 능력도 용기도 없는 저같은 묘지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징후 모색과 그것의 보존을 위해 제 딴엔 온 힘을 쏟다보니 갈데없는 묘지 기로 전락해버렸다는 것. 이 필연적 현실에 그대로 안주한다면 무엇보다 징후찾기 및 그 보존이라는 당초의 목표는 어찌 되는 것인가. 본말전도도 유분수라 하지 않겠는가. 당초의 그 목표를 위해서도 단연 시체지기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해야 묘지기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징후 찾기 및 그 보존에 함몰하다 빠져 버린 이 덫에서 제가 벗어날 길이란 혹시라도 있는 것일까. 제게 모종의 위기 의식이 감돌았다면 바로 이 부근이었습니다. <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을 좇아 투르판으로 타크라마칸 사막으로, 바이칼호로, 카트만두로 라사로 헤맨 것도 그런 탈출구 찾기였던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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