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맛있는 수다]동창회 다음날 필요한 해장라면

  • 입력 2001년 6월 11일 16시 52분


동창회에 나가보셨나요?

전 지난 주말, 대학교 동창회에 나갔습니다. 제가 95년에 대학을 졸업했으니 거의 6년 만에 동기들을 만나는 자리였죠. 저 잘난 맛에 학교를 다니던 철없던 애들이 이젠 다들 사회에서 한 몫을 하는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만나다니 어찌 기대가 안되겠어요? 동창회를 앞두고 전 마냥 감상적인 기분이 되어 저의 20대를 파노라마처럼 되돌아보았답니다. 별 사건 없더군요. 쩝...

근데 동창회에 나가기 전 제 연락을 받은 남자 동창은 그러더군요. “야, 유부남 유부녀끼리 한번 놀아보자!” 뜨아아~ 이게 무슨 망발? 순수한 20대 초반의 마음으로 돌아가 동기들을 만나려던 저에게 아줌마 아저씨끼리 진하게 놀아보자니요... “참, 세상이 애들을 많이 버려놓았군...”생각하며 동창회에 나갔죠.

너무 오랜만에 학교 근처에 갔더니 그 곳은 이미 제가 다니던 시절의 조용한 대학가가 아니더군요. 고시원과 당구장, 간단한 호프집이 드문드문 자리잡았던 길에 온갖 패스트푸드점이 진을 치고 형형색색의 카페와 술집 간판이 휘황찬란! 새로 생긴 지하철을 타고 “우와~ 우리 학교 앞에도 지하철이?...”하던 저는 너무 달라진 모습에 방향감각을 잃고 헤맬 뻔했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건 저처럼 달라진 학교 앞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진 저의 동기들이었습니다. 6년 만에 만났지만 어쩜 그렇게 변하지 않았는지. 그저 손에 결혼반지가 하나씩 끼워져있는 것 밖엔 달라지지 않은 얼굴들이었습니다. 시간이 내 친구들 얼굴만 비껴 간 것인지, 아님 6년이란 시간이 사람의 얼굴을 달라지게 만들기엔 짧은 시간인지...반가운 마음에 세월의 무게를 훌쩍 뛰어넘은 우리는 "부어라! 마셔라!"하며 시끌벅적한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버렸습니다. 딸꾹!

다음날 아침, 당연히 제 속은 말이 아니었죠. 신랑이라도 있으면 죽는 소리를 해서 국 한그릇이라도 얻어먹으련만(내가 그동안 끓여바친 해장국만 해도 몇 그릇인데...) 우리 신랑은 현재 출장 중...겨우겨우 부엌까지 기어가서 냉장고를 뒤지니 라면 한봉지 달랑 나오더군요. 어쩌겠어요? 그거라도 끓여먹을 수 밖에요. 이름하여 해장라면!

제가 끓여먹은 해장라면은 국 끓여줄 아내가 없는 사람을 위한 간단한 해장요리입니다. 라면에 고추와 콩나물, 개운한 조개를 넣어 아픈 속을 달래주는 거죠. 아쉬운 대로 간단하고도 정신이 확 드는 해장국 대용이 됩니다. 하지만 남편들에겐 내놓지 않는 게 좋아요. 아무리 조개와 콩나물을 넣어도 라면은 라면이라 "서방님이 속 쓰리다는데 라면이라니!"소리 나오거든요. 물론 안 먹음 자기만 손해지만...

“그러게 아줌마가 무슨 술을 퍼마시고 다니냐!”고 물으실 분, 계시겠죠? 흥! 이렇게 대답해 드리죠. “아줌마는 사람 아닌감?” 내 손으로 해장라면 끓여먹는 게 좀 궁상맞긴 하지만, 즐거운 동창회에서 술 한방울 입에 안 대는 ‘확 깨는’ 아줌마가 되느니 전 ‘좀 망가진’ 아줌마로 살고 싶습니다. 이상 술 덜 깬 아줌마의 수다였습니다!

***혼자라도 좋다! 해장라면 끓이는 법***

재 료 : 라면 1개, 물 2컵, 바지락 1/2컵, 콩나물 한 줌, 고추, 파 조금

만들기 :

1.바지락은 소금물에 담가 해감을 빼낸 뒤 바락바락 문질러 깨끗이 씻는다

2.콩나물은 깨끗이 손질해 둔다

3.고추와 파를 송송 썰어놓는다

4.냄비에 물과 스프를 넣고 끓이다가 콩나물과 바지락을 넣는다

5.면을 넣어 같이 끓인다

6.바지락 입이 벌어질 대까지 끓여준다

7.파와 고추를 넣는다

ps. 라면이랑 유난히 궁합이 잘 맞는 것들이 몇가지 있죠? 대파나 고추, 치즈, 김치나 떡, 조개 같은 것들요. 전 된장찌개 끓이고 남은 조개를 라면에 넣어 먹곤 해요. 그럴 땐 스프의 양을 조금 줄여주면 더욱 개운하고 시원한 국물이 되죠. 또 냉장고에 고추나 대파가 뒹군다 싶으면 무조건 라면에 넣어먹구요. 느끼한 맛 전혀 없고 훨씬 맛있어진답니다!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