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엄마의 와우! 유럽체험]브레멘 음악대

  • 입력 2001년 1월 12일 14시 48분


제 어릴 적 꿈은 당시 살고 있던 서교동을 탈출해서 브레멘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닭, 당나귀, 개, 고양이가 도시 음악대가 되기 위해 브레멘으로 향한다는 동화 "브레멘 음악대" 때문이었지요. 참고서와 대학입시, 뿌연 먼지 속 대학생활을 거쳐 서른 다섯에 비로소 브레멘을 가볼 수 있었습니다.

브레멘의 첫 인상은 도시 초입부를 장식하고 있는 금빛 동상. 보통 도시 초입부는 군인이나, 임금님의 동상이 떡 버티고 있건만, 이곳은 아기 돼지 사육사의 동상이 반기고 있어 꿈의 도시 브레멘에 도착했음을 느끼게 했죠.

도시의 모든 것을 보려면 일단 시청사 쪽으로 향해야 합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대성당이 중심이지만, 독일은 종교개혁의 나라답게 시청인 라트하우스(Rathaus)가 중심이기 때문이에요.

막연히 동화의 도시로만 알고 있었던 브레멘은 독일에서 함부르크 다음으로 큰 항구도시랍니다. 965년부터 무역이 시작되었다는군요. 요즘도 유럽 지역으로 수출되는 담배, 커피, 면화 등은 브레멘 항구로 도착한대요. 브레멘에서 마시는 커피가 유난히 향긋한 이유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서울 시청과 뭐 그리 다르겠는가 생각하며 들어선 브레멘의 시청. 감탄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현관 입구에 떡 버티고 있는 1670년대 화려한 나선형 계단이며 영광의 방은 베르사이유의 화려함을 연상시킵니다. 영광의 방 천장에 매달린 큰배의 위용은, 바다를 향한 야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구요. 조각하는 데만 30년이 걸린 향나무 계단이며, VIP 연회실은 화려함의 극치입니다. 누구는 들어가 밥도 먹었다는데,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고개만 쑥 빼서 봐야하는 비애...

보통 독일의 시청에는 라츠켈러라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일전에는 시청을 방문하는 귀빈들을 위한 만찬장소로 이용했던 곳인데, 요즘은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어요. 특히 브레멘의 라츠켈러에서는 무려 600가지의 와인을 갖추고 있어서, 와인애호가의 필수코스가 되었습니다.

시청사 광장에는 이샤마크트라는 축제가 한창입니다. 평화의 상징인 로란트 동상이랑 칼자루에도 주렁주렁 쵸컬릿 목걸이가 걸려 있군요. 구수한 먹거리 장터, 꽃시장, 새시장, 회전목마, 중세연극 등도 한창입니다.

음... 배고파...다들 생소한 먹거리들이라, 일단 사람들이 많이 서있는 줄을 따라갑니다. 사과를 동그랗게 잘라 튀겨낸 다음 시럽에 찍어먹는 맛도 그만이구요, 두툼한 스테이크를 양파소스에 조려서 빵 사이에 끼워주는 쯔비벨은 추운 겨울날 환상의 점심 먹거리. 감자를 볶아 소스를 뿌려 먹으며 나우도 추운 배낭여행의 설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앗, 저기 브레멘 음악대의 동상이 있네요. 축제 깃발 사이에 숨겨져 있어 눈에 뜨이지 않는데도, 동상을 보러 오는 행렬이 그치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청동 동상. 문득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픈 향수를 느끼게 합니다.

브레멘에서 제일 아기자기한 골목이라는 뵈트허슈트라세로 접어들어 볼까요? 유명한 커피 상인이 중세 시가지를 재현해보려고 만든 거리랍니다. 길이는 100미터 정도. 촘촘히 영화관, 갤러리, 상점, 액세서리 아틀리에, 빵집, 찻집 등이 미니어처 속을 걷는 듯 해서 즐거워요.

여기에는 지붕과 지붕사이에 종이 매달려 있어서 하루 세번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해 줍니다. 종소리가 울리면, 옆의 벽면이 병풍과 같은 모양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동화의 도시 브레멘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답니다. 종소리가 시작되기 30분전부터 사람들이 골목에 빼곡하게 몰려드는 것도 즐거운 풍경이었죠.

여기서 조금 걸으면 슈노어 지구가 나와요. 옛 어부들 주거지역이라 어부마을로 불리는 곳인데, 손바닥만한 집 안에 독특한 아틀리에와 화랑들이 꾸며져 있습니다. 여기서 갓 항구에 도착한 원두커피 맛을 즐기며 잠시 휴식하는 것도 좋겠지요.

열심히 발품을 팔며 돌아본 브레멘. 땅거미가 질수록 축제의 열기는 뜨거워지고, 휴일 저녁 가족과 몰려나온 인파로 걷기 힘들 정도입니다. 몸도 으슬거리는데, 시청 지하의 라츠켈러에 가볼까요? 브레멘의 향긋한 와인도 시음해 볼겸.

와우! 웅장한 중세의 와인창고로 내려간 느낌입니다. 큼직한 오크 통 수십 개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오크 통 위에 새겨진 바커스 동상은 주렁주렁 포도송이를 매달고 있습니다. 와인목록이 하도 길고 복잡해서 옆자리 중년신사에게 도움을 청한 덕분에, 아주 향긋하고 시원한 화이트와인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맛이 어떻소? 애는 몇 살이요? 독일에는 어떻게 왔소? 와인 잔을 마주치며 생면부지 사람들과도 금새 친해지는 매력이 있는 곳이더군요. 헤어질 때 그는 흔들면 눈발이 쏟아지는 장난감을 나우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가끔 브레멘 장난감을 흔들어 봅니다. 흩날리는 눈발을 보고 있노라면 저 밑에 가라앉아 있던 내 꿈도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서입니다.

나우엄마(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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