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사랑 속으로… 욕망 속으로… 절망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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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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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윤보인 지음/288쪽·1만1000원·문학과지성사

그늘지고 눅눅하다. 토악질이 날 만큼 역겨운 냄새가 지면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듯하다. 이 책은 문명과 사회에서 한 발짝 벗어나 음습한 개인만의 공간과 욕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괴한 분위기로 그린다.

단편 ‘뱀’에서 스물다섯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한 헌책방 여주인은 헌책 속에서 작은 반지를 발견한다. 그 책을 팔았던 남자가 반지를 찾으러 왔지만 남자에게 관심이 있던 여자는 반지를 숨긴다. 하지만 어느 날 여자가 키우던 뱀은 반지를 삼키고, 허물을 벗은 뒤 도망간다. 애타게 반지와 뱀을 찾던 여자는 자신의 성기 속에서 뱀을 찾는다. 반지는 ‘사랑’으로, 뱀은 ‘욕망’으로 변주돼 점점 여자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몸속으로 들어간다. 절망감은 더 깊어진다.

단편 ‘악취’는 문명화된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길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여성은 지독한 악취를 맡는 것을 즐긴다. 고기를 사서 냉장고에 넣지 않고 방치해 그 썩어가는 냄새를 맡을 정도다. “가식적”이라며 현대화된 냄새인 향수를 거부한 여성은 “쉽게 볼 수 없는 폐허 같다”며 악취를 더욱 병적으로 쫓는다.

저자는 성기 속에 뱀이 똬리를 틀거나 집을 시궁창처럼 만들어 악취를 즐기는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기존 사회 질서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시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로테스크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은 소설가 편혜영 씨의 ‘사육장 속으로’를 떠올리게 만든다.

비현실적인 단편들에 비해 중편 ‘바실리 사원’과 ‘살풀이 춤’은 고뇌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끄집어낸다. ‘바실리 사원’은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마이미스트들을 통해 ‘언어가 지워진 자리에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내는’ 마임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살풀이 춤’은 고된 삶 속에서 춤을 완성하는 예술가를 그린다.

단편 다섯 편, 중편 두 편을 묶은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문학평론가 이경재 씨는 “사회라는 거대한 상징적 체계의 틀로 수렴되지 않는 개인의 고유한 충동이나 욕망을 집요하게 추구했다”고 평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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