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129>선물(膳物)과 뇌물(賂物)

  • 입력 2004년 11월 16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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膳은 月과 善으로 이루어졌는데, 善은 소리부도 겸한다. 月은 원래 잘라놓은 고깃덩어리를 그렸다. 善은 갑골문에서 양의 눈을 그렸고, 금문(왼쪽 그림)에서는 羊과 .(말 다툴 경)의 결합으로, 말다툼과 같은 분쟁을 羊의 신통력으로 판단해 준다는 상징으로부터 옳고 선한 의미를 형상화했다.

그러므로 膳은 좋은(善) 일에 쓰이는 고기(肉)를 말한다. 고대사회에서 제일 중요하고 좋은 일이 제사였으므로, 膳은 그 ‘제사에 쓰이는 고기’를 말했다. 제사를 위한 고기는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것을 쓰기에, 평소에 고기를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당시 제사 후 나누어 먹는 고기는 대단한 膳物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풍부하여 명절이나 제사 음식이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최상급의 고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膳物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자의 자원으로 본 膳物은 정말 순수한 개념의 선물이다. 모리스는 선물이라는 것이 당장의 이익을 발생시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이익을 위해 마련하는 것이기에 ‘지연된 교환가치’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것은 한자의 뿌리에 들어 있는 膳物이 공동체 모두의 즐김과 나눔에 초점이 놓인 이해타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개념이었지만, 자본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침범해 오고 있는 현재, 선물의 순수성을 논하는 것 그 자체가 점차 힘들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賂는 貝와 各으로 구성되었는데, 貝는 조개화폐로 재화를 상징한다. 各은 갑골문(오른쪽 그림)에서 거꾸로 된 발(止·지)과 집의 입구(口·구)를 그려 집에 ‘도착하다’는 뜻을 형상화했다. 그래서 賂는 재화(貝)가 이르는(各) 것을 말한다.

그래서 賂物이란 화폐를 다른 사람의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며, 발이 거꾸로 그려졌다는 것은 그것이 비정상적이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賂物의 원래 의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단지 뇌물을 전달하는 도구가 인간의 발보다 훨씬 효율적인 차량 등 교묘한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뇌물의 전달에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우편과 같은 다른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직접 전달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어떤 매개체를 이용하거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정당한 경로는 비밀이 새어나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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