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피해자 시신 손톱 밑 혈흔만 분석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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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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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CSI/표창원 유제설 지음/288쪽·1만3800원·북라

#2011년 1월 14일 만삭의 의사 부인이 집 안 화장실 욕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부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였다. 대학병원 전공의인 남편이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1995년 6월 12일 어머니와 딸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아이가 욕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목 졸림에 의한 질식사였다. 여성은 치과의사였다. 남편이자 아버지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평행이론’이 떠오를 정도로 비슷한 두 사건이지만 16년 전 용의자는 무죄로 풀려났고, 지금의 용의자는 1심과 2심 모두에서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왜 결과가 다를까. 과학수사 전문가인 두 저자의 결론은 “16년 동안 한국의 과학수사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범죄와 수사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질수록 사회도 안전해진다”고 강조한다.

책은 현장감식, 지문, DNA, 혈흔, 미세증거부터 검시, 화재 감식까지 과학 수사의 대표 영역들을 실제 사례와 함께 상세히 알려준다. 풍부한 자료 사진은 물론이고 장마다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넣어 전문성을 높였다. 사례 하나하나가 단편 추리소설만큼 흥미로워 과학수사 관련자들이 아닌 일반인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오늘날 과학수사의 눈으로 1995년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의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 경찰은 초동수사 당시 피해자의 손톱 밑에 혈흔이 있음을 알았지만 손톱을 잘라두지 않았다. 이때 혈흔에 대한 혈액형과 DNA 분석이 이뤄졌다면 범인의 신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 시신이 담겨 있던 물의 온도와 욕실 온도, 물에서 꺼내기 전후의 시신의 직장 온도를 재지 않았다. 이로 인해 언제 사망했는지에 대한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1995년에 있었던 인기 가수 김성재 씨의 사망 사건을 처음부터 조목조목 재조명한 부분도 흥미롭다. 당시 김 씨의 여자친구가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떠올랐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두 저자는 “만약 여자친구가 진짜 살인범이었다면, (무죄는) 그의 치밀함이나 변호사의 유능함이 아닌 수사와 기소의 실패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같은 실패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과학수사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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