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떡하죠]김광웅/커가는 자녀 애취급 말라

  • 입력 2000년 1월 30일 19시 36분


어느 중학교 남학생 학급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담임선생님이 학생들한테 조금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 중 너희 엄마같은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 손드는 학생이 아무도 없었다.

“그럼 너희들 중 아버지를 존경하는 사람 손들어 봐.” 이번에는 51명의 학급 학생 중 많은 수가 손을 들었다.

한 학생이 그 이야기를 어머니한테 전했다. 어머니는 섭섭했지만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며 “그래, 이 다음에 네 아내가 엄마 같으면 안 되는 이유가 뭐니”하고 따졌다. ‘나는 최선을 다해 저를 돌보고 기르는데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일인가’하는 억울한 감정이 자꾸만 엄습해옴을 느끼면서…. 그랬더니 아들의 대답은 정말로 의외였다.

“제 아내가 엄마 같다면 우리 자식들이 얼마나 불쌍하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직 어린애로만 생각하고 아들을 대했던 어머니는 말문이 막혔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편 섭섭하고 원통한 감정이 솟구치기도 했지만 ‘내가 너무 몰랐구나. 아이와 함께 나도 성장했어야 했는데…’하는 회한이 몰려왔다.

아들 이야기의 핵심은 ‘엄마의 잔소리’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의식주 생활과 공부, 그리고 일거수일투족을 사랑으로 챙겨주었으나 다 큰 아들에게는 그게 모두 ‘엄마의 잔소리’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잔소리는 결국 아들을 불쌍한 인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니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 기르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늘 그 결과도 부모 생각대로 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기대 밖일 수 있다. 그래서 부모 노릇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이 커감에 따라, 더욱이 급격하게 바뀌는 시대변화에 맞추어 부모가 자기계발을 하고 변화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노력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들은 자녀 발달에 맞추어 부모도 발달해야 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자녀가 어려서 아직 살아가는 방법을 잘 모를 때에는 자상한 배려와 구체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녀가 이미 중학생이 되면 부모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즉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린애 다루 듯하는 부모의 간섭과 통제가 아니라, 도덕적 규칙을 어기지 않는 한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추구하는 삶의 모습을 정서적으로 지원하고 격려해 주는 너그러움과 따뜻함이다. 늘 관심을 갖고 지켜보되 잔소리나 간섭이 아닌 삶의 용기와 힘을 배가시켜 주는 부모의 성숙한 배려가 오히려 청소년을 보다 큰 그릇으로 만드는 지혜이다.

김광웅(숙명여대 교수·한국청소년복지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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