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리뷰]연극 '흉가에 볕들어라' 인간욕망 풍자

  • 입력 1999년 10월 27일 18시 41분


극장 입구부터 무대와 객석까지 우거진 대나무 숲. 그 사이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약간 찌그러진 모습의 작은 흉가가 나온다. 집안을 지키는 업구렁이와 두꺼비는 무한히 반복되는 리듬에 맞춰 알 수 없는 노래를 하고 있고.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듯한 분위기다.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흉가에 볕들어라’(극단 인혁)의 무대. 관객은 극장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억 속에 아스라히 묻혀진 공간 속으로 옮겨진다.

‘가신(家神)신앙’. 부엌에는 조왕신, 장독대엔 터신, 뒷간에는 변소각시, 지붕에는 바래기, 대들보엔 성주신, 우물에는 용왕신…. 우리네 가신들은 먼 곳에 있는 절대신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고통까지도 공유하는 소박한 신이다.

그런데 이 연극의 주인공들은 가신의 탈을 쓴 ‘불량귀신’이다. 살아 생전의 욕망 때문에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집 안에만 붙어사는 꼬인 인생사들이다. 영화 ‘식스센스’에서처럼 죽어도 죽었는지 모르는 귀신들에게 죽음을 알려야 하는 것이 이 연극에 등장하는 유일한 산 사람 ‘파복숭이’의 임무.

작가 이해제는 극본을 ‘시극(詩劇)’ 형태로 구성했다. 지시문보다는 상징어로 무대를 해설하고, 대사도 직설적 대화보다는 운문으로 표현했다. 연출가 이기도는 창과 사설조로 음악성을 살리고, 시각적 연출로 이에 화답했다.

강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로 된 대사와 귀신들의 배꼽잡는 행동은 한바탕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파복숭이마저 잡귀가 되어 매일 죽음의 밤을 재현하며 살아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욕망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우리의 세계도 혹시 흉가는 아닐까. 11월21일까지. 화수목 7시반, 금토일 4시반 7시반. 1만∼1만5천원. 02―747―2090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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