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키드/伊의 유치원교육]토론…체험…궁리

  • 입력 1999년 8월 9일 18시 31분


이탈리아 북부 레지오 에밀리아시(市)의 디애나유치원에서 얼마전 일어난 ‘사건’. A군(5)이 친구인 B군(5)의 편지함에 ‘△’를 그린 쪽지를 넣었다. 나흘을 기다렸으나 B군으로부턴 감감무소식. A군은 “우리집에 놀러오라고 편지(△)했는데 무시당했다”며 화를 냈지만 B군은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두 아이는 사방이 거울로 된 작은방인 ‘테타히드론’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모습이 앞면 뒷면 옆면 등으로 나뉘어 수없이 비치는 현상을 보았다. 선생님이 B군에게 말했다. “우리의 모습은 이렇게 100가지가 넘어. 우리가 쓰는 언어도.”

◆양귀비에도 햇살이

디애나유치원의 3∼5세 아이 75명은 지난 8주 동안 여름을 기념할 벽화를 그리는데 골몰했다. 아이들은 양귀비꽃과 얼룩말 등이 들어간 그림을 그리기로 뜻을 모으고 소재의 배치와 색깔, 모양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이중 칼로타(5·여)의 몫은 양귀비꽃을 그리는 것이었다. 칼로타는 먼저 줄기 위에 빨간색 꽃이 봉긋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그렸다. 그뒤 칼로타는 선생님과 함께 양귀비가 지천인 숲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며칠간 칼로타는 꽃을 꺾어 친구의 머리에 꽃아주면서 꽃밭을 누비고 다녔으며 카메라에 양귀비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칼로타는 다시 양귀비꽃을 그렸다. 꽃의 크기는 훨씬 커졌고 가지는 커다란 꽃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활처럼 휘어진 모습이었다.선생님은 양귀비꽃을 찍은 슬라이드필름을 벽에 비췄다. 아이들은 온몸에 양귀비꽃을 ‘쬐이며’ 춤을 췄다.

8주째, 칼로타가 그린 양귀비꽃에는 빨간색 중간중간에 노랑에 가까운 주황색이 칠해져 있었다. 칼로타는 설명했다. “양귀비꽃이 바람에 흔들릴 때 햇빛을 받는 부분은 여기저기가 노랗게 변해요.” 칼로타는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8주전부터 비디오에 담아 온 자신의 ‘성장과정’을 지켜보았다.

◆새들의 놀이공원

레지오 에밀리아시의 라빌레타유치원에선 92년부터 ‘새들의 놀이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4개월에 걸쳐 새들이 찾아와 놀만한 테마파크를 짓는 것.

아이들의 관심은 새들을 위한 분수대를 만드는 데 집중됐다. 아이들은 수주일간 도시를 샅샅이 관찰했다. 분수에는 물을 내뿜는 것만큼이나 분출된 물을 모으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토론 끝에 아이들은 비를 막기 위한 우산을 거꾸로 놓으면 오히려 물을 모을 수 있게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아이들은 ‘새들의 놀이공원’이 문을 여는 날 부모와 친구들에게 보낼 초청장을 쓰기 위해 글을 배웠다.(한국레지오교육연구회장으로 레지오 에밀리아시로부터 최신 정보를 받고 있는 계명대 오문자 겸임교수가 이 기사에 도움말을 주셨습니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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