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서 나는 기다린다 이곳은 어두울 수도 있고 밝을 수도 있다 그것은 내가 스위치를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스위치를 올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사방의 벽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기다린다 그래 단지 기다린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자세는 자궁 속의 아기와 같다 창고 속의 어둠은 그 주위를 둘러싼 양수다 출렁이는 아늑한 어둠 나는 그 속에서 밥을 먹듯, 섹스를 하듯, 술을 마시듯, 담배를 피우듯, 음악을 듣듯 세계를 듣는다 느낀다 먹는다 물론 이런 것들은 밖의 세계를 통해 나에게 전달된다 나는 지금 창고 안에 있다 이 중엔 나에게 해로운 것도 있다 나는 기형아를 잉태할 수도 있다 아니 내가 기형아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어느 순간 슬그머니 문틈으로 햇살이 조금 들어와 있었다 거미줄이 눈에 띄었지만 외면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 빛은 각도를 달리하면서 한동안 머무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 다시 어둠이다 사방은 더욱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그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나는 순간 불을 켠다 먼지투성이의 여기저기 쓰다 만 물건들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아직도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조윤희>
―시집 ‘모서리의 사랑’(세계사)에서
무언극을 보는 듯한 시다. 발아되지 않는 자아와 무의식이 진흙 덩어리로 뭉쳐있는 것 같다. 내가 간직한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어두운 그러나 분명한 나의, 우리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