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결정의 엣센스’…세가지 렌즈로 본 쿠바 미사일위기

  • 입력 2005년 6월 18일 07시 57분


코멘트
1961년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왼쪽)과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오른쪽). 두 지도자는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양국 관료조직에 맞서 세계가 핵전쟁의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냈다. 사진 제공 모음북스
1961년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왼쪽)과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오른쪽). 두 지도자는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양국 관료조직에 맞서 세계가 핵전쟁의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냈다. 사진 제공 모음북스
◇결정의 엣센스/그래엄 앨리슨, 필립 젤리코 지음· 김태현 옮김/498쪽·2만 원·모음북스

1971년 출간돼 국제정치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념비적 저서의 28년 뒤 개정판을 번역한 책이다. 초판의 저자인 그래엄 앨리슨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현재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자문관을 맡고 있는 필립 젤리코 씨와 1999년에 함께 만든 이 개정판은 초판 발행 후 비밀 해제된 미국과 소련의 각종 문헌과 함께 그동안의 이론적 발전을 반영하고 있다.

국제정치학에서 이 책의 독보적 위치는 우선 이론적 차원에 있다. 이 책은 당시 국제정치이론에서 절대적 지위를 누리던 합리적 행위자 모델(제1모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조직과정 모델(제2모델)과 관료정치 모델(제3모델)을 제시했다.

경제학의 영향을 받은 합리적 행위자 모델은 국가의 외교정책 결정이 가능한 모든 변수를 고려해 가장 이익을 낳을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면 외교정책은 최고정책결정권자 단독의 판단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모든 정보를 고려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모델은 ‘암상자(블랙박스) 모델’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경영학의 영향을 받은 제2모델은 외교정책은 거기에 참여하는 다양한 집단의 표준행동지침이나 관행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당신이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 것이냐는 우선 어떤 음식점을 가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중국집에 간다면 당신은 그 음식점의 메뉴판을 보고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당연히 설렁탕이나 피자는 제외되기 마련이다.

제3모델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제시됐기 때문에 ‘앨리슨 모델’이라고도 불린다. 외교정책은 그 정책 결정에 참여한 관료집단 간의 파워게임의 결과이기도 하다. 같은 사람이라도 그가 외교부 장관일 때랑 국방부 장관일 때 판단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조직의 장으로서 그 조직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개인적 라이벌 의식이 상대가 제시한 대안의 허점을 파고들게 하고 자신이 제시한 대안의 약점을 감추게도 만든다. 개정판은 이 모델의 이름을 ‘정부정치 모델’로 바꾸고 파워게임보다는 상호 역학관계로 초점을 확대했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이런 이론을 1962년 10월 16∼28일 13일간 발생한 쿠바 핵미사일 위기라는 구체적 현실에 적용해 설명했다는 점에 있다. 이 책은 3개의 모델을 서로 다른 렌즈로 삼아서 쿠바 미사일 위기 과정에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의사 결정 과정에 적용했다. 특히 개정판은 소련 측 자료를 바탕으로 양측의 의사 결정을 상호비교하면서 전개돼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이 책은 지금 한반도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쿠바 핵미사일 위기와 북한 핵 위기는 △대상을 미국으로 한다는 점 △핵무기가 수단이란 점 △쿠바와 북한 같은 약소국의 안보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 △미국의 대응 방안이 군사공격론-봉쇄론-협상론으로 유사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쿠바 핵미사일 위기와 북핵 위기를 비교하는 연구가 거의 없었다. 항상 코앞의 문제에만 매달려 왔기 때문이다. 초판 발행 이후 34년 만에 이 책의 제대로 된 번역서가 국내에 소개된 것이 더욱 반가운 이유다. 원제 Essence of Decision: 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1999년).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