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

  • 입력 2003년 11월 7일 1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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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이정우 외 6인 지음/220쪽 8900원 이룸

한국 시간으로 5일 오후 11시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된 영화 ‘매트릭스3(사진)’은 1999년 1편이 상영될 때부터 많은 철학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영화는 가상현실이 실제현실을 압도하는 조짐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하던 20세기 말의 상황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가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철학의 근본 문제들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는 자유의지와 운명, 신과 인간 등 철학의 보편적인 주제들까지 담겨 있었다.

5월 ‘매트릭스2’ 개봉에 맞춰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굿모닝미디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한문화) 등이 번역돼 나온 데 이어 이번에는 국내 필자 7명이 ‘매트릭스’를 소재로 담론을 펼쳤다. 이전의 번역본들이 철학 외에 영화학, 사회학,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 필자들의 시각을 보여줬던 데 반해, 이번의 필자들은 모두 철학 전공자들이다. 특히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박영욱 한국디지털대 외래교수 등 대중문화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온 사람들이 필자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에서 대중문화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철학적 담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다.

이 원장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이 이미 프로그램에 의해 짜여진 것인가, 아니면 주체의 결단에 의해 우연적으로 벌어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운명과 자유의지의 문제에 접근한다. 이 원장은 등장인물들이 매트릭스에 의해 프로그램 된 운명을 일탈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이런 일탈 자체가 매트릭스에 의해 프로그램 된 운명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이 프로그램 된 운명을 깨뜨릴 수 있는 도구로 ‘사랑’이란 화두를 제시한 것은 역시 ‘뻔한 할리우드적 발상’이라고 냉소적인 평가를 던진다.

박 교수는 “매트릭스의 세계가 현실 세계에 의해 대체돼야 할 타당한 동기가 매트릭스 내에 설정되지 않았다”며 영화 ‘매트릭스’의 논리적 구성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또 “매트릭스가 필요로 하는 인간의 ‘잉여에너지’는 인간이 삶의 욕망을 가질 때에만 생산될 수 있다”며 매트릭스에 갇혀 삶의 욕망을 잃은 인간들로부터 잉여에너지를 공급받는 ‘매트릭스’란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심혜련 홍익대 겸임교수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스미스 요원’에 주목한다. 그는 2편에서 스스로 수많은 자기복제를 해내는 존재인 ‘스미스 요원’을 통해 ‘아우라’(Aura·복제될 수 없는 원본의 독특한 분위기) 없이 자기증식하는 디지털 존재가 어떻게 변화해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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