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에세이/박형준]살아생전에 못해드린 말 “엄마, 사랑해요”

동아일보 입력 2012-12-05 03:00수정 2012-12-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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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시인
부모는 살아계실 때 온 정성을 다해 자식을 사랑한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부모를 사랑한다. 내 꼴이 꼭 그렇다.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나는 2남 6녀의 막내로 자랐지만 어머니로부터 속을 알 수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막내여서 사랑받는 게 익숙한 측면이 있어서 그랬을까.

어머니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섬으로 고춧가루 장사를 떠나시곤 해서 나는 누이들의 등에 업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말이 없는 것을 늦둥이인 데다가 젖을 일찍 떼서 그렇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게다가 나는 도시로 일찍 올라온 편이었다.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강한 분이셨다. 시골에서 서너 달에 한 번꼴로 도회지로 올라와 자식들이 어떻게 사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셨다. 팔순이 되셨을 때도 팔남매의 집을 일일이 돌아다니시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자식들의 생활을 건사하고 나서야 고향집으로 내려가셨다. 그것이 어머니가 일 년에 몇 번꼴로 치르는 자식 순례였다.

그 순례의 마지막에 항상 막내의 자취방이 있었다. 빨래부터 김장까지 노모는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을 하셨다. 내가 일을 끝내고 저녁 무렵에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방바닥의 머리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고 계셨다. 방바닥의 머리칼은 방 빗자루보다 손바닥으로 쓸어내는 게 더 청소가 잘된다는 거였다. 나는 어머니가 밤에 잠이 드실 때를 제외하곤 내 자취방에서 편하게 누워계신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어머니에게 내 속을 드러내고 살갑게 이야기를 해 드린 적이 없었다. 부엌에서 일을 하시는 어머니를 놔두고 나는 문학청년기인 이십 대부터 내 방으로 들어가 시를 쓰곤 하였다. 내 신춘문예 당선작 ‘가구(家具)의 힘’도 어머니 때문에 쓰게 되었다. 어느 날 친척집에 들렀다가 내 자취방에 들른 어머니가 부엌에서 고구마 순을 다듬으며 중얼거리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래도 자식인지라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안 듣기가 뭐해서 내 방문을 반쯤 열어두었다. 어머니는 고구마 순을 뚝뚝 부러뜨리며 신세 한탄하듯 껍질을 벗겨내시며 내 걱정을 하고 계셨다. 2남 6녀를 키우느라 손등이 개미처럼 까맣게 타들어간 어머니의 손을 방문 틈으로 힐끔거리며, 나는 내 나름대로 어머니의 말씀에 내 생각을 덧붙이듯이 종이에 받아 적어 내려갔다. 결국 나는 그렇게 우연히 쓰인 한 편의 시로 문단에 나왔다. 그 시는 내가 쓴 것이 아니고 어머니가 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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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칠 년 전 네 번째 시집을 냈을 때 아버지를 잃었고 작년에 다섯 번째 시집을 내고 올봄에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는 들판에 나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시면 그저 조용히 방 안의 저녁빛으로 물드는 창호지 아래서 발뒤꿈치의 굳은살을 면도날로 깎아내는 분이셨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방바닥에 떨어진, 면도날로 베어낸 발뒤꿈치의 굳은살이 아버지의 설운 삶의 흔적인지 몰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장례식 기간에는 눈물이 안 나더니 어머니를 고향에 모실 때, 어머니를 하관할 때에야 허리가 끊어질 듯한 슬픔이 뭔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몸이 급격히 쇠약해져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혼자 걷지는 못했지만 내가 찾아가 부축해 드리면 나와 함께 요양원 복도를 산책하시길 좋아했다. 그때 어머니에게 내가 정말 살갑게 말했었나 보다. 어머니, 뭐 드시고 싶어요. 어머니는 도통 그런 말씀을 안 하시는 분이셨는데, 초콜릿이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하지만 나는 그 약속을 끝내 지켜 드리지 못했다. 그저 휴대전화에 ‘초콜릿’이라는 문자를 저장해 놓고 있었다. 어쩌면 그 말이 노모가 내게 그토록 듣고 싶었던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었을까. 자식은 언제나 때늦은 후회로 어머니를 되새기며 울 뿐이다. 그래도 이 못난 자식의 사랑한다는 뒤늦은 고백을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와 함께 내려다보시며 받아줄 것이다. 살아생전 언제나 그러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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