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수첩]아들도 응원 못하는 美 스포츠기자 윤리

  • 입력 2009년 2월 3일 02시 58분


극적인 역전 승부가 펼쳐지면서 레이몬드 제임스 스타디움에서 정신없이 바빴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사무국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4쿼터 중반쯤 그라운드에 들어선다. 이때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게 있다. 자신들이 갖고 나가는 모자와 유니폼이 피츠버그 것인지, 애리조나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무국 관계자들은 우승 세리머니 때 감독과 선수들에게 챔피언 모자와 유니폼 상의를 나눠준다. 이 때문에 슈퍼볼에 진출한 두 팀 것을 모두 준비해두고 있다. 문제는 패한 팀의 모자와 유니폼 처리다. 올해의 경우 ‘제43회 슈퍼볼 챔피언 애리조나 카디널스’라고 새겨진 것들이다. 이 제품들이 밖으로 새나가 자칫 경매에라도 오르면 곤란하다.

게다가 사무국은 경기 후 일반 판매를 기다리는 패전 팀의 모자와 유니폼도 전량 회수해야 한다. 대체로 이 모자와 유니폼들은 자선단체에 기부돼 중남미, 아프리카 등 오지로 전달된다. 지난해 막판 역전패를 당한 뉴잉글랜드의 모자와 유니폼은 니카라과로 전달돼 초등학교 축구팀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날 기자실에서 주목을 받은 기자가 있었다. 애리조나 와이드 리시버 래리 피츠제럴드의 아버지 피츠제럴드 시니어였다. 미니애폴리스 지역신문 칼럼니스트로서 스포츠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1981년부터 슈퍼볼을 취재한 베테랑이다.

피츠제럴드는 전반전에는 스틸러스 수비수에 막혀 꼼짝 못했으나 후반전에는 NFL 최고 리시버다운 활약으로 터치다운 2개를 연결시켰다. 하지만 아버지 피츠제럴드는 무덤덤했다.

기자들의 불문율 때문이었다. 미국 스포츠 기자들 사이에는 이른바 ‘카디널 룰’이라는 게 있다. 기자는 기자실에서 특정 팀과 선수를 응원해서는 안 된다. 미국 기자는 클럽하우스에서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아서도 안 된다.

아버지 피츠제럴드는 아들의 첫 슈퍼볼 출전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자신의 28번째 슈퍼볼을 관전했다. 애리조나가 이겼으면 더 많은 화제를 남겼을 텐데….

로스앤젤레스=문상열 미국 스포츠 칼럼니스트 moonsytexas@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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