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산책]벤치 지킨 전민정, 눈물의 아시안컵

  • 입력 2008년 10월 24일 02시 59분


“속상해요. 그리고 너무 아쉬워요.”

이달 초 태국 나콘랏차시마에서 제1회 아시안컵 여자배구대회가 열렸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아쉽게 중국에 져 준우승에 그쳤지만 일본전 11연패의 사슬을 끊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대회 마지막 날 이성희 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함께 조촐한 파티를 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뛰었던 선수들은 스트레스를 풀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리가 끝나고 대부분의 선수는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던 선수는 KT&G 김세영 선수와 흥국생명 전민정 선수. 조용하게 얘기를 나누던 전민정 선수는 김세영 선수를 붙잡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전민정 선수는 대회 기간에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태국에 오기 전 부상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대회 시작 전 선수를 교체할 수도 있었습니다. 일부 배구 팬은 감독이 고의로 전민정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았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성희 감독은 “만약 대회를 며칠 앞두고 선수 교체를 하게 되면 교체된 선수가 자신을 대타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전민정 선수를 데리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부상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코트에 서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고 서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쌓인 서러움이 마지막 날 눈물이 돼 흘렀습니다.

사실 전민정 선수를 생각한 이 감독은 중국전에서 서브 기회 때 한 번이라도 코트에 서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습니다.

전민정 선수는 5년 전 수련선수로 프로에 들어와 주전을 꿰차며 ‘연습생 신화’를 일궈냈습니다. 피나는 훈련과 오기로 버틴 세월입니다. 그런 그에게 이 감독의 배려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전민정 선수는 태극마크를 달고 코트에 설 것입니다. 그때의 눈물을 약으로 삼아 코트 위를 뛰어다닐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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