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조국]<4>이란의 애증

  • 입력 2006년 6월 24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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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앙골라의 월드컵 D조 예선 마지막 경기가 열린 21일 오후 독일 라이프치히 중앙역. 경찰들은 전날보다 훨씬 긴장한 모습으로 역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날 경기를 맞아 극우파의 시위와 유대인들의 맞불시위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 때문이었다.

이란 경기에 웬 극우파? 그러나 이란과 극우파는 독일 경찰이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보안 문제 중 하나다. 독일 극우파가 월드컵 이전부터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려야 한다”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말을 환영해 왔기 때문이다.

“아마디네자드? 불싯(쇠똥이라는 뜻의 욕)이다.”

이란 국기를 몸에 두르고 왜 이란 대통령을 욕할까…. 후만(27) 씨는 친구들과 함께 이란 국기를 두르고 공식 응원장인 아우구스트 광장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영국 런던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한다는 그에게 “얘기 좀 하자”고 했더니 대뜸 이 말부터 했다.

그는 “여기 모인 이란 팬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보라. 대부분 이슬람혁명을 피해 도망 나온 망명자의 2세들이다. 십중팔구는 똑같은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후만 씨에게 조국 이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대학 교수였던 아버지는 1979년 이슬람혁명을 피해 온 가족을 이끌고 영국으로 건너왔다. 후만 씨는 그때 생후 여덟 달된 갓난아기였다.

자라면서 조국 ‘이란’은 그에게 모멸감의 동의어였다. 서방에 적대적인 이란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적의에 찬 시선을 보냈다. 저녁 뉴스 시간에 이란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아버지는 이란 정부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막말을 퍼붓곤 했다. 후만 씨도 이란의 극단적인 외교 행태와 인권 상황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지금 당신은 그 이란의 국기를 몸에 두르고 있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그는 “나도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란을 사랑한다. 이란은 내가 속한 가족, 나의 정체성, 내가 속한 런던의 이란인 사회를 대표한다. 이란 정부가 싫지만 이란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당신도 아시아인이지 않은가. 아시아도 힘을 가져야 한다. 이란의 지정학적 위치는 유럽을 견제하기 적당하다. 따라서 나도 이란이 핵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저 아마디네자드라는 ‘미친놈’의 손에 그런 위험한 물건이 들어가면 안 된다.”

‘극우파의 이란에 대한 짝사랑은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묻는 참에 베를린에 산다는 다른 이란인이 끼어들었다. “극우파? 아마디네자드가 나오기 전에는 뒷골목에서 이란인을 만나면 두들겨 팼을 놈들이다. 할 수만 있으면 얼굴에 침을 뱉어 주고 싶다.”

아우구스트 광장에 가까워지자 길 건너에서 한 무리의 이란인이 펄쩍펄쩍 뛰며 손을 흔들었다. 런던 이란인 커뮤니티의 친구들이었다. “이란의 선전과 당신의 행운을 빈다”고 하자 후만 씨는 활짝 웃었다. “이란은 이미 두 번 졌으니 오늘이 끝이다. 내일부터 코리아를 응원하겠다. 아시아를 대표해 잘 싸우기 바란다.”

라이프치히=유윤종 특파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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