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페]부산에 야구열기 되살린 롯데 정수근

  • 입력 2004년 6월 13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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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롯데로 이적한 뒤 부산에 ‘신바람 야구’를 불어넣고 있는 정수근. 그가 가세하면서 부산경기 관중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야구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신나게 사는 그를 보면 진정한 프로를 떠올리게 된다. 부산=김종석기자
올 시즌 롯데로 이적한 뒤 부산에 ‘신바람 야구’를 불어넣고 있는 정수근. 그가 가세하면서 부산경기 관중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야구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신나게 사는 그를 보면 진정한 프로를 떠올리게 된다. 부산=김종석기자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밀린 빨래 때문에….”

약속시간에서 겨우 5분 늦었는데 무척 미안해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부산 사직구장 앞 길가. 1억원이 넘는 고급 스포츠카 렉서스 SC430을 몰고 나온 그가 빨래 얘기부터 꺼내다니.

프로야구 롯데 정수근(27). 지난주 한화와의 홈 3연전 기간에 만난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늘 바빠 보였다. 빠른 발로 잽싸게 도루를 하듯 삶 자체가 쉴 틈이 없었다.》

정수근은 지난해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려 6년간 무려 40억6000만원을 받고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서울 토박이인 그에게 “왜 부산이냐”고 물으니 아직도 생생하다는 기억 하나를 털어놓았다. 신인이던 OB시절 95년 10월 사직에서 열린 롯데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 그는 2-2 동점이던 연장 10회 초 3루타를 날려 결승 타점을 올렸다. 3만명이 넘는 부산의 만원 관중 앞에서 고졸 신인 정수근의 이름 석자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당시 부산에 오면 늘 관중이 넘쳐났어요. 저는 원래 팬이 꽉 차야 야구가 잘 풀리는 체질이거든요.”

▲스탠드가 넘쳐야 몸이 풀려요

하지만 롯데가 2000년 이후 깊은 부진에 빠지면서 부산 원정을 와도 야구장은 텅 비었다. 관중석에서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가 타석에서 들릴 정도였다고. 그래서 지난해 FA가 되면서 삼성으로부터 50억원 제의도 받았지만 부산 야구를 살리고 싶어 미련 없이 롯데를 선택했다는 것.

동계훈련 때 정수근은 사직구장 근처 횟집에서 “우리 좀 살려 달라”는 팬들의 하소연을 들었다. 그들은 야구장에서 오징어 김밥 등을 파는 노점상. 최근 몇 년간 롯데가 성적부진으로 관중이 급감하면서 생계를 위협받는 지경이라는 얘기였다.

자신의 공언대로, 또 팬들의 소망대로 정수근은 올 시즌 롯데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며 관중 몰이에 앞장섰다. 지더라도 끈기 있게 따라붙었으며 이길 때는 속 시원한 승부를 펼치는 팀컬러를 주도한 것. 롯데는 13일 현재 홈 관중이 20만9612명(경기당 평균 748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만8190명(3150명)보다 두 배 이상 크게 늘어났다.

▲입으로 10억 벌었대요

관중 동원의 중심에는 물론 정수근이 있다. 그는 처음 롯데에 합류했을 때 낯설었다고 했다. “팀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 놀랐어요. 다들 잘 웃지도 않고요.”

‘즐거우면서도 진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야구 철학. 인상 쓴다고 경기가 잘 풀리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두산에서 위로 선배들이 줄줄이 있었던 정수근은 롯데에선 고참과 막내를 이어주는 허리 역할. 특유의 친화력으로 닫혀있던 후배들의 마음을 열었다. 주루플레이와 상황에 따른 타격 요령도 자상하게 가르쳐 줬다.

롯데에 입단하면서 받은 40억원이 넘는 거액의 내용을 따져보면 공격 10억원, 수비 10억원, 도루 10억원에 나머지는 벤치 파이팅이라는 게 그의 말. 그만큼 입담 좋은 정수근은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대박을 터뜨리며 선망의 대상이 된 그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프로 초년생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 독촉에 시달렸고 두산 시절 월급이 차압돼 3만원도 안되는 월봉을 받은 적도 있다.

어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그는 남다른 선행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도루 1개 당 5만원을 모아 유소년 야구 발전기금에 쓰기로 했으며 병상에 누워있는 롯데 출신 임수혁을 돕는 데 10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그렇게 배웠습니다.” 먼 훗날 얘기지만 그의 은퇴 후 희망은 초등학교 감독. 꿈 많은 어린이들이 야구의 즐거움을 흠뻑 느끼게 하고 싶단다.

▲요즘이 힘든 시기예요

정수근은 6월 들어 다소 주춤거리고 있다. 팀이 연패에 빠졌고 타격 감각도 무뎌졌다. “안 될 때는 빨리 잊고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네요.”

거액을 받은 FA선수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다. 선두타자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부담감이 커졌다. 탈출구는 무얼까. “훈련밖에 더 있겠어요. 요즘은 평소보다 1시간 더 공을 때립니다.”

그는 사진 촬영을 마치자마자 야구장을 향해 달렸다. 걸어가도 충분히 훈련 시간은 맞출 수 있었지만 남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가 몸을 풀어야 한다는 것. 잠시 후 훈련장에서 만난 정수근은 완전히 딴사람이었다. 오렌지색 롯데 유니폼을 입고 땡볕 아래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알록달록한 멋쟁이 선글라스를 벗어던진 그의 눈매는 진지했다. 진정한 프로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부산=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정수근은▼

▽생년월일=1977년 1월20일

▽신체조건=1m78, 78kg

▽출신교=성동초등학교-건대부중-덕수상고(현 덕수정보산업고)

▽별명=날쌘돌이

▽종교=불교

▽가족관계=부인 서정은씨(30) 아들 호준(5)

▽주요경력=94년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우승 주역

95년 OB(현 두산)입단-계약금 6000만원, 연봉 1700만원

2004년 롯데 입단-6년 40억6000만원

▽수상경력=4년연속 도루왕(98∼2001년) 골든글러브 2회(99년,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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