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칼럼/함정임]‘황제’의 뒷모습

  • 입력 2002년 6월 18일 18시 58분


지난 11일 프랑스-덴마크 전을 보기 위해 인천으로 달려가는 동안 나는 베토벤의 ‘황제’를 들었다. 왜 ‘황제’인가. 패색이 짙은 팀을 이끌고 중원에 나서야 하는 부상중인 대장의 심정을 지단에게서 미리 읽어버린 것인가. 그리하여 악성(樂聖) 베토벤의 최고이자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인 ‘황제’를 빌어 전대회 ‘황제’의 마지막 장쾌한 일전을 기대한 것인가. 일산에서 사십 오분, 문학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서 나는 그동안 내 마음을 장악한 ‘황제’의 역사에 골몰하였다.

지단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상처였다. 그것은 비단 지단 한 사람에게만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바티스투타, 레코바, 피구, 비에리, 호나우두, 베컴까지. 누구인들 뒷모습에 당당할 수 있으랴. 한때 오만해서든, 불운해서든 돌아선 뒷모습이 아픔인 것은 이미 한 발 멀어진 현실에서 저마다 한번 크게 넘어졌던 자신의 과거를 보기 때문이다. 항구에 간 길에 내처 연안 부두로 내달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질주해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처음부터 다시 ‘황제’를 듣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다시!” 강철 같은 타건으로 ‘황제’를 연주, 지휘하던 베토벤이 고함쳤다. 청중들은 그때까지 베토벤의 청각 장애를 실감하지 못했고, 당황한 지휘자는 “처음부터 다시!”를 거듭 절규했다. 그러나 음은 점점 더 흐트러지고 화음은 혼란에 빠졌다. 그때서야 청중들은 천재의 심각한 장애를 알아챘고, 동정했고, 비웃었다. 소리의 감옥에 갇힌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그의 애호가들이 아닌 낯모르는 이방인 여인이었다.

불멸의 연인. 베토벤이 사랑한, 그리고 베토벤을 사랑한 여인들을 우리는 정확히 누군지도 모른 채 그렇게 부른다. 어제의 결전(決戰)에 나섰던 당신들, 필드에 사랑을 두고 뒤돌아서야 했던 당신들을 위해 오늘도 나는 베토벤의 ‘황제’를 듣는다. 당신들의 불멸의 연인이 되어.

함정임(소설가·본보 월드컵 자문위원) etrelajih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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