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직원 만족시켜야 기업이 큰다"

  • 입력 2002년 1월 23일 19시 01분


삼성SDS는 지난해 전직원을 대상으로 ‘지금의 조직문화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느냐’는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 작업을 위해 구성된 ‘조직문화 혁신 태스크포스’ 팀원들은 온라인 조사는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6500여명의 직원들을 직접 만나 180개 문항에 대해 일일이 답변을 받았다.

내용을 분석해보니 직원들이 회사보다는 자신이 우선이며 관심있는 분야의 프로가 되기 위한 능력개발의 기회를 갖고 싶어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삼성SDS는 이에 맞춰 작년 10월 직원들의 프로페셔널리즘을 강조하는 ‘SDS 프로웨이’라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선포했다. 또 올해부터 전 직원들에게 연간 200시간 이상 외국어 재무 회계 마케팅 등 원하는 분야를 의무적으로 공부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올해 초 대학에서 수강신청을 받는 것처럼 개인별 공부계획을 받기도 했다. 물론 비용은 회사에서 전액 부담한다.

최근 대기업들이 ‘인력이 곧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판단에 따라 근무환경이나 기업문화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 또는 조직에 대한 충성도(loyalty)를 높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오랫동안 돈과 시간을 투자해 키워놓은 유능한 직원들을 다른 기업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것. 과거에는 직원이 기업을 만족시키기 위해 헌신했지만 이제는 기업이 직원을 만족시켜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직원 만족도를 높여라〓직원이 기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직원의식 조사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오래 전부터 실시해왔다. 그렇지만 그룹 차원의 방침을 마지못해 따르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개인별로 점수를 매긴 결과가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니기도 해 직원들의 솔직한 답변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직원들이 다니고 싶어하는 직장을 만들어야 생산성이 향상되고 기업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업의 직원의식 조사가 더욱 객관적이고 치밀해지고 있다.

제일제당은 지난해 11월 미국계 인적자원(HR) 컨설팅업체인 타워스페린의 도움을 받아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원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회사의 비전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였다.

이동통신업체인 KTF는 작년 5월 018(한솔엠닷컴)과의 합병을 앞두고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합병회사의 바람직한 기업문화와 비전’을 묻는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에 따라 올해부터 직원의 복리후생을 강화하는 한편 단기 해외연수 과정 등 직원들의 자기 계발 기회를 넓혔다.

경영혁신팀 안호경 과장은 “지난해 조사를 통해 직원들이 회사 비전을 공유하게 됐다”며 “올해에도 2, 3월중 다시 한 번 직원의식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HR컨설팅업체인 휴잇 어소시어츠의 김용성 과장은 “최근 한국 기업들이 직원 만족도를 점차 중요하게 인식하면서 프로젝트 의뢰가 50% 이상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온라인 상에서 직원들의 만족도를 조사해주는 컨설팅업체(피엔오 컨설팅)까지 생겼다.


▽직원들이 원하면 다 바꾼다〓직원 만족도 조사는 단순히 직원들의 복리를 개선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평가보상제도 개선이나 직제 개편 등 기업 조직을 바꾸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화장품 등 생활소비재 업체인 태평양은 지난해 직원 만족도 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리 과장 부장 등 직급 제도를 없앴다. 직원들끼리는 ‘과장님’ ‘부장님’ 대신 이름 뒤에 ‘님’ 또는 ‘씨’를 붙여 부르고 있다. 직원들의 연공서열보다는 성과를 중시하므로 직급 중심에서 업무중심으로 조직을 바꾼 것.

제일은행도 지난해 3차례에 걸쳐 직원 의식조사를 실시한 뒤 직원 평가제도를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바꿨다. 새로운 평가제도에 따라 모든 직원들은 자신을 평가하는 상사와 면담을 통해 평가를 받게되고 자기 계발 계획을 상의하기도 한다.

▽아직은 시작 단계〓한국기업의 직원들 사이에서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아직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9월 휴잇 어소시어츠와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이 아시아 10개국 355개 기업을 대상으로 직원 면담 등을 통해 ‘일하기 좋은 직장’을 선정한 결과 베스트 20개 기업 중 한국 기업은 2곳에 불과했다. 그 중 1곳은 다국적 기업인 한국휴렛팩커드였다.

전문가들은 직원 만족도를 높이는 데는 임금인상, 복리후생, 자유로운 업무환경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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