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코리아를 띄워라"…국가 이미지 높여야

  • 입력 2002년 1월 7일 18시 45분


한국산 공연물 가운데 가장 크게 히트한 문화상품이랄 수 있는 ‘난타’. 99년부터 외국 원정 공연도 하고 있는 이 작품의 기획자인 연예인 송승환씨는 해외공연 문제로 외국인을 만날 때 종종 곤혹스럽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면 상대방이 ‘한국 같은 개도국에서도 이런 공연을 하나요’라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어요.”

송씨는 “한국에서 영화도 만들고 연극도 상연한다는 말을 하면 놀라는 외국인들도 있더라”고 말했다.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이처럼 아직도 한국을 아프리카나 남미의 어느 후발개도국쯤으로 여기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상당수 한국 제품들이 1류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지만 정작 한국은 잘 알려지지 않거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한국제품 마케팅에도 큰 약점이 되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월드컵이라는 호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가 이미지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메이드 인 코리아’를 홍보하기 전에 ‘코리아’를 알리는 일이 더 급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자동차 만드나요?〓“한국에서도 자동차를 만들 줄 아나요?”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인 한국이지만 외국에서 한국산 자동차를 판매하는 딜러들은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한 딜러는 “제품 홍보 이전에 한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설명해야 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이런 이유로 상당수 한국 제품들은 국적을 드러내지 않고 제품 마케팅을 하는 경우도 많다.

단지 미국제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일본제나 프랑스제라는 이유로 제품을 팔 때 보이지 않는 ‘후원’을 받는 나라들의 기업 제품과는 반대다. 국가 이미지가 상품의 가치를 깎아먹는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국가 이미지는 수출산업에 있어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구매를 촉진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고 있다. 국가 이미지는 한 나라의 역사, 민주화 진전 정도, 경제자유도, 상징적 문화유적 등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이뤄진다.

▽한국 이미지, 여전히 부정적〓외국인들이 느끼는 ‘한국의 이미지’는 대체로 긍정적이지 못하다. 한국전쟁, 군사독재, 분단 상황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아직 더 강하다. 문화적 전통이나 경제발전 등의 긍정적 이미지는 소수파다.

김형남 밸류코퍼레이션 대표는 “한국 제품은 사실과 관계없이 저임금이 바탕이 된 싸구려 제품이며 선진국 제품의 모방품이라는 나쁜 이미지가 주류를 이뤄왔다”고 지적했다.

이런 국가 이미지는 그대로 제품 구매와 연결된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외국인에 비해 긍정적인 이미지로 한국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한국제품을 사는 확률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국가 이미지가 한국제품 마케팅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 이미지’ 경쟁〓세계 각국은 이런 이유로 자신의 국가 이미지 개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쇠락한 이미지를 새롭게 변신시키는 국가마케팅 작업을 몇 년째 활발히 벌이고 있다. 21세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영국의 창의적 제품을 결합함으로써 외자 유치와 관광수입을 늘리려는 것이다. 재작년에 정부와 민간분야 대표로 ‘패널 2000’을 구성한 것도 이런 노력의 하나다.

프랑스도 일찍부터 ‘대외이미지 관리위원회’를 총리 산하에 두고 있다. 종전의 문화중심적인 이미지에서 요즘엔 ‘기술프랑스’ ‘산업프랑스’ 이미지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벨기에도 총리가 중심이 된 국가 이미지 재건팀이 뛰고 있다.

▽한국, 넓은 시야 못 가져〓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국가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인 노력이 없는 형편이다. 95년과 96년 한국해외홍보협회와 대외홍보위원회가 구성돼 국가홍보와 국가 이미지 관리에 대해 종합적인 전략을 짜고 실행하는 걸 시도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기구들은 설립 이후 몇 차례 회의만 하더니 이렇다 할 내용 없이 정부조직 개편 등의 이유로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작년 말 한국을 찾은 마케팅 권위자 필립 코틀러 박사의 “한국은 아직도 단기이익에 몰두하느라 넓은 시야를 못 가지고 있다”는 지적을 곰곰이 새겨볼 일이다.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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