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NN은 22일 카슈끄지가 사우디 영사관 안으로 들어간 지 몇 시간 후 영사관 뒷문으로 카슈끄지처럼 보이는 남성이 걸어 나오는 화면을 보도했다. 이 남성은 카슈끄지의 옷을 입었고, 안경과 시계도 착용했다. 흰색 수염까지 가짜로 붙였다. 그는 암살팀 15명 중 한 명인 무스타파 알 마다니였다. 카슈끄지가 제 발로 영사관을 걸어 나간 것처럼 보이기 위해 체격이 비슷한 대역을 미리 준비한 것이다. 이들은 당일 전세기로 이스탄불에 입국해 당일 모두 터키를 떠났다. 철저히 계획된 암살이었다.

▷카슈끄지가 실종되기 이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침해는 극심했다. 사우디의 사실상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부터 ‘부패청산’을 내세워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였다. 라이벌 왕족과 전·현직 장관, 기업인은 물론 성직자, 언론인들을 무차별 투옥했다. 워싱턴포스트(WP)가 17일 공개한 카슈끄지가 실종 직전 써놓은 마지막 칼럼 제목은 ‘아랍에서 가장 필요한 건 표현의 자유’였다. 그는 칼럼에서 “아랍 정부는 언론을 침묵시키기 위해 공세를 하고 있다”며 “이들은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차단하고 현지 기자를 체포한다”고 썼다.

▷국제언론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올해만 45명의 언론인이 순직했다. 절반이 넘는 28명이 암살됐는데 이 가운데 22명이 정치와 관련됐다. 최근 권력형 비리를 취재하다 암살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만 해도 암살된 기자(18명)보다 사고로 숨진 기자(28명)가 많았다. 권력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울수록 위험해지는 것은 언론인의 숙명인 듯 하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