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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심규선 기자의 눈]청춘도 아프지 않는 게 좋다

입력 2017-11-07 18:51업데이트 2017-11-0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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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북지역 10개 대학이 공동으로 준비한 취업 페스티벌이 7일 덕성여대 하나누리관에서 열렸다. 개막 전의 테이프 커팅 모습. 왼쪽부터 김호규 서울북부고용센터소장, 이병재 고용노동부 서울북부지청장, 김호성 성신여대 총장, 이상한 한성대 총장, 최영철 서경대 총장,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천장호 광운대 총장, 이동진 도봉구청장, 박겸수 강북구청장, 김종호 서울과학기술대 총장, 박찬량 국민대 교학부총장, 김영미 서울고용센터소장, 최혜지 서울여대 학생처장, 임근수 성북구청 일자리경제과장, 이병희 삼육대 취업진로지원센터장. 덕성여대 제공

가을은 대학 캠퍼스도 비껴가지 않았다. 여대의 캠퍼스는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마지막 외침 같은 원색의 잎새들과 그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성근 바람이 나를 맞았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던 법륜 스님의 말씀이 가슴 속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런데, 이렇게 감상에 젖을 일이 아니다. 오늘 취재는 현실 중에서도 가장 매섭다는 청년 취업에 관한 것이니까.

7일 서울 도봉구 삼양로에 있는 덕성여대 하나누리관에서는 서울 동북지역 10개 대학이 공동으로 준비한 취업 페스티벌이 열렸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행사는 페스티벌(축제)이 아니다. 기대도 크지만 실망할 때가 더 많고, 자신도 있지만 불안이 더 크기에 어쩜 그 반대다. 그럼에도 굳이 페스티벌이라는 말을 쓴 데서 청춘들에게 하루빨리 봄날이 오길 바라는 소망을 읽는다.

‘서울 동북지역 10개 대학’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광운대, 국민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삼육대, 서경대, 서울과학기술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한성대를 말한다. 이들 대학은 올 4월 교류 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이유는 예상대로다. 각 대학의 갖고 있는 자산을 공유함으로써 대학 운영의 시너지를 높이자는 것이다. 일종의 합종연횡이라고나 할까. 학생수는 줄고, 할 일은 많아지고, 기대는 높아지고, 경쟁은 심해지는 현실에서 이런 선택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구직 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상반된 두 개의 감정이 교차했다. 하나는 나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껏 잘 살아온 것 같다는 안도다. 이런 감정이 교차한 이유는 아마도 기자가 올해 말로 정년퇴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한 김에 하나 더 양해를 구하고 싶다. 기자는 취업박람회 같은 것을 취재한 경험이 많지 않다. 그래서 구직에 나선 젊은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잘 알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우려에 대해서는 기자가 몸담고 있는 신문사는 어느 언론기관보다 일찍 청년실업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청년드림센터’라는 별도기구를 만들어 기사와 사업, 행사 등을 통해 조금이라도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면서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기자는 이 행사를 취재하며 몇 가지 새로운 경험을 했다.

우선 구직활동이 거의 종합예술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능력과 정보는 기본이고, 자신의 능력을 정보에 기초해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형태로 포장해서 기업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박람회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씨줄 날줄로 정교한 틀을 짰다고나 할까.

동성제약, 일양약품, 아워홈, 비비큐, 파고다교육그룹 등 서울 경기지역의 중견·강소기업 28곳이 현장채용을 전제로 부스를 만들었다. 한샘, 보미건설, 한국후지제록스 등 6개 기업은 채용상담관을 운영했다. 빙그레, 한전, 국민연금관리공단, LG디스플레이, 이케아코리아는 별도로 기업설명회를 열었다.

아워홈과 상담을 마치고 나오던 김유진 씨(25·광운대 경영학과 8월 졸업)는 “평소 물류와 유통에 관심이 많아 아워홈의 구매부서에 대해 물어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국어 실력보다는 자기소개서가 더 중요하며, 책임감을 요구하는 분야라는 말을 들은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옆에서는 매 시간마다 대기업, 공기업, 외국계기업, 청년고용정책, 해외취업, 아르바이트에 관한 특강이 이어졌다. 대기업 취업전략이 첫 번째 강의였는데 50분 동안 끝까지 들어봤다. 강사도 말했지만, 대기업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고 일반적인 취업전략이었다. ‘취업은 연애’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그 직업을 연구하고, 관찰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한 연애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애는 선택이고, 취업은 필수인 요즘 현실이 젊은이들의 불행일지 모르겠다.

기업별이 아니라 직무별로 상담을 해주는 곳도 있다. 마케팅, 엔지니어, 승무원, 영업, 경영지원, VMD 등 여섯 분야였다(VMD가 뭔지 몰라 옆에 있던 여학생에게 물어보니 순간적으로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비주얼 머천다이저(visual merchandiser)’라고 한 수 가르쳐줬다. 요즘 같으면 나는 취업을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고용노동부와 강북구청, 도봉구청, 성북구청의 일자리관련 부서도 참여했다. 그러니 취업도 종합예술이지만, 박람회 준비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내 관심을 더 많이 끈 곳은 따로 있었다. 취업지원서비스라는 분야다. 이력서 사진 촬영, 면접 메이크업, 면접 보이스 코칭, 이력서 클리닉, 취업 타로, 직업 적성검사, 취업스트레스 검사 등이다. 실제로 학생들도 이곳에 많이 몰려 있었다.

취업 타로를 보는 부스 앞에는 늘 줄이 생겼다. 불안감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점괘를 해석해주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심규선 기자

특히 취업 타로의 인기가 높았다. 막 타로 점을 보고 나오는 장인혜 씨(23·서경대 화학생명공학과 4년)에게 물어봤다.

“어느 직종을 가고 싶으냐고 묻기에 화장품 회사와 제약회사를 얘기했다. 화장품 회사를 생각하며 3장, 제약 회사를 생각하며 3장을 뽑았다. 화장품 회사는 입사 가능성은 높으나 나중에는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하고, 제약회사는 들어가기는 힘들지만 나중에는 좋아진다는 점괘가 나왔다.”

왜 타로 점을 봤느냐고 물어봤다(그 시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상담을 받는 게 낫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며).

“내년 2월에 졸업한다. 그동안 자기소개서를 8군데에 냈는데 다 떨어졌다.”

불안한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대답은 역시 젊은이다웠다.

“아직 기회는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력서 클리닉을 받고 나온 고민희 씨(24·덕성여대 사회학과 3년)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력서라는 것을 처음 써 봤다. 전체를 보여줬더니 뺄 것과 넣을 것, 고칠 것을 확실하게 알려줬다.”

면접 메이크업(에르모소 뷰티직업전문학교)을 해주는 부스 앞에도 긴 줄이 생겼다. 궁금하다. 어디다 포인트를 두고 메이크업을 해주는지.

“단정하고 깔끔하다는 인상을 주도록 하는 게 면접 메이크업의 포인트다. 첫 인상이 매우 중요하므로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취업에 많은 도움을 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말을 한 이는 김민경 씨. 19살이다. 올 5월 미용사 메이크업 자격증을 땄고, 지금은 연수생 신분이다. “어떻게 이렇게 일찍부터 이 일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렸을 적부터 갖고 싶었던 직업”이라고 했다. 10대의 발언은 화장을 받는 언니, 오빠들보다 듬직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도 인생의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졌다. 지금은 직업은 갖는 게 가장 중요한 듯하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일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행사장 밖에서는 아이돌그룹 레인보우의 지숙 씨(왼쪽 끝)가 취업준비생들을 응원했다. 지숙 씨는 고용노동부가 제작하는 5부작 웹드라마 ‘희망소생사 고용씨’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이 드라마는 이달 하순경 채널A와 네이버TV에서 동시에 방영을 시작해 매주 한 편씩 내보낼 예정. 심규선 기자

이날 박람회를 찾은 학생들은 줄잡아 2000여명. 일부는 기업의 예비면접을 통과하고 본 면접을 볼 기회를 얻었다.

취업박람회들은 어쩌면 비슷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한 이유가 있다. 간접 경험을 통해서라도 우리 사회가 직업을 찾는 젊은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이 행사를 준비한 덕성여대 대외협력처의 이소연 과장은 “좀 더 일찍 준비를 해서 더 빨리 개최했더라면 더 많은 기업이 참여했을 텐데 아쉽다”며 “그래도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나오며 그게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청춘이라고 꼭 아파야 하느냐는 것이다. 취업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젊음을 보며 청춘도 아프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며…. 그래서 앞에서 얘기한 ‘나도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는 욕심은 취소한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누렸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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