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광장민주주의, ‘아랍의 봄’ 되지 않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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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2016년 대한민국 광장은 뜨거웠다. 분노와 격앙이 가득했다. 하지만 ‘촛불’도, ‘태극기’ 집회도 모두 평화로웠고 진정성이 있었다. 지난 10년간 지구촌에는 격렬한 시민투쟁이 많았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가 대표적이다. 미국 시민은 ‘1 대 99’ 양극화 사회를 규탄하며 ‘우리는 99%다(We are the 99%)’라는 구호를 외쳤다. 정부의 재정파탄과 경제위기가 심각한 남유럽에서도 가진 자들의 탐욕을 규탄하는 ‘분노의 역류(逆流)’가 몰아쳤다.

지구촌 휩쓴 분노

 그해 이슬람권에서는 튀니지에서 촉발한 ‘아랍의 봄’이 알제리, 리비아, 요르단, 이집트까지 들불처럼 번졌다. 그 여파에 따른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발호는 현재진행형이다. 유럽으로의 난민 유입은 유럽의 미래까지 뒤흔들 판이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경제위기와 정치권의 부패, 무능이 중첩될 때 저항의 물결이 격앙되고 격렬했다. 2011년 서구와 이슬람권의 시민투쟁은 모두 미국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양극화에 기인한다.

 서구 선진국과 아랍권 시민투쟁은 원인은 비슷하지만 치유하고 해결해가는 과정에선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민사회가 성숙하고 자유민주주의의 경험이 축적된 서구는 시민투쟁이 대부분 선거로 수렴되고 정책 변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민주주의 경험이 일천한 나라일수록 쿠데타, 내전 등 무정부 상태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월가를 점령하라’에서 나타난 미국민의 분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영향을 주었다. 이번 대선에선 ‘샌더스, 트럼프 현상’을 불렀다. 유럽도 비슷하다. 안타깝게도 ‘아랍의 봄’ 운동은 국가 개혁으로 귀결되지 못하고 혼란과 내전이 심화되는 ‘아랍의 겨울’로 치닫는 중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여기서 난다.

 우리에게도 세계 경제위기의 영향이 극심하다. 다행히 그런대로 위기를 견뎌왔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 체질을 강화한 덕분이다. 하지만 양극화의 민생 파탄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부(富)의 쏠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미국 다음이고 속도 면에서는 최고다. 금수저, 흙수저, 갑질 등 신조어가 난무하고 자영업자 몰락, 청년실업, 가계부채 급증에 김영란법까지 덮쳐 민생은 벼랑으로 밀려가고 있다.

 이 와중에 터진 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다’. 비선 실세의 어이없는 국정 농단과 대통령의 오만과 무능, 정경유착까지, 가진 자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꾹꾹 참아왔던 국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정유라 특혜 입학 비리는 학부모들과 학생들까지 광장으로 불러들였다. 경제, 정치 위기에 교육 스캔들까지 겹쳐 폭발력이 컸다. 자유민주주의 축적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없었으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파괴보다 건설이 힘들다

 정말 힘들었던 한 해가 저문다. 광장에서는 평화집회의 품격을 보여주었지만 일부 미디어와 정치권은 민도(民度)에 부응하지 못했다.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대통령에 대한 사생활 폭로, 인권 무시, 국가 기밀 공개, 여성 비하, 허위 보도 등 역기능을 드러냈다. 촛불을 대선에 이용하려는 정치권에선 탄핵안이 부결되면 ‘혁명’을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건 일종의 ‘광기(狂氣)’다.

 이제 이성(理性)을 찾아야 한다. 분노와 흥분을 자제하고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릴 때다. 이참에 개헌을 반드시 이루어내자. ‘촛불’ ‘태극기’ 모두 나라를 걱정한다는 점에서 같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국가 개조를 위해 힘을 모으자. ‘아랍의 겨울’처럼 안 되려면 말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이슬람권#튀니지#광장#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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