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의 시장과 자유]‘재벌 3세 갑질’의 그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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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48)은 2011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조부인 이재준 창업자와 부친인 이준용 명예회장에 이어 경영 사령탑을 맡은 그는 국내 건설업계 사상 첫 ‘3세 경영’의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았다.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46)은 정주영 현대 창업자의 4남인 정몽우 씨의 맏아들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정몽우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조카인 정일선을 챙겨줘 계열사 사장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이해욱과 정일선의 횡포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정일선은 교통법규를 무시하라는 내용까지 포함된 A4 용지 140장 분량의 매뉴얼을 운전기사에게 준 뒤 그대로 하지 않으면 폭언을 일삼았다. 이해욱의 기사들은 그가 차량 룸미러를 돌려놓고 사이드미러까지 접은 채 운전하게 했다고 폭로했다. 운전기사 갈아 치우기를 밥 먹듯이 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이해욱 정일선의 횡포

이해욱과 정일선은 명문 사립대를 나와 학벌도 남부럽지 않다. 미국에 유학해 석사 학위도 땄다. 그러나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에게 시정잡배 수준의 ‘갑질’을 서슴지 않았다. 기본적인 인성(人性)도 갖추지 못했는데 재벌가(家) 3세에 명문대 졸업장이 무슨 소용인가.

두 사람이 곤욕을 치르는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쳐도 선의의 피해자들을 양산한 것은 또 다른 ‘그늘’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파문은 한진그룹에 엄청난 악재로 작용했다. 대림산업과 현대BNG스틸 임직원들도 요즘 마음고생이 클 것이다. 부친 잃은 조카를 안타깝게 여겨 아들 못지않게 배려한 정몽구 회장, 통 큰 사회적 기부로 이미지가 좋았던 이준용 명예회장 역시 유탄을 맞았다.

후유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뜩이나 국민의 심정이 팍팍해진 현실에서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슈퍼갑의 횡포’는 사회적 불만에 기름을 끼얹는다.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고 대기업을 공공의 적(敵)으로 여기는 풍조가 확산되면 여론에 편승한 정치인과 관료들의 과잉 규제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대기업 오너 가문 3, 4세라고 모두 안하무인(眼下無人)은 아니다. 나는 10년 전 경제부장 때 만난 현대차 3세 정의선 부회장의 겸손을 기억한다. 예의범절이 몸에 밴 반듯한 직장인 못지않은 태도였다. 삼성가 3세 이재용 부회장이나 LG가 4세 구광모 상무의 처신에 대해서도 별다른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몇몇 ‘썩은 사과’ 때문에 선대(先代)들이 세우고 키운 기업의 추락을 막기 위해 고심하는 다른 차세대 경영자들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규제의 올가미가 넓어지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해당 기업 임직원들은 물론이고 거미줄처럼 얽힌 전후방 연관 효과로 영향받는 수많은 국민의 앞날에도 짙은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다.

배려와 양보 덕목 갖추라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남들 위에 서는 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보다 자유가 제한된다”고 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정치인 고위관료 법조인 기업인처럼 특혜를 받는 사람들의 책임은 ‘희생’이라는 말로 압축된다”며 목숨을 바치는 희생, 기득권을 내려놓는 희생, 배려 양보 헌신의 희생을 강조한다.

재력에서 최상위 계층인 재벌가 3, 4세들에게 다른 희생까지 요구하진 않지만 ‘돈의 힘’에 취해 상식 이하 언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만은 사라져야 한다. 권력이든, 재력이든 ‘남의 위에 선 사람’이 배려와 양보의 덕목을 갖추면 더 돋보인다는 세상사의 평범한 진리를 아는 게 그리 힘들까.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이해욱#정일선#대림산업#현대bng스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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