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사이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털이 나고 발이 넷인 것은 같지만 동산의 사슴이 말이 될 수는 없고 깃이 있고 날개가 둘인 것은 같지만 들새가 난새가 될 수는 없다

毛而四足則同 而園鹿終不能爲馬 羽而兩翼則同 而野鳥終不能爲鸞
(모이사족즉동 이원록종불능위마 우이양익즉동 이야조종불능위난)

― 김의정 ‘잠암일고(潛庵逸稿)’》
 

풀이나 동물 중에는 서로 비슷하여 혼동을 일으키는 것들이 있지만 대체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부 먹는 풀과 비슷한 독초는 잘못 알고 먹으면 심한 경우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니 그 해로움이 실로 크다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그것들이 사람을 속이려 한 것이 아니라 비슷함 때문에 사람들이 오인하여 빚어지는 일들이니 그것만을 탓할 수는 없다.

이렇듯 속이려 한 것이 아닌데도 비슷하여 사람들을 해치기도 하는데, 속이려고 작정을 하고 진실인 양 행세하는 경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에 속고 또 해를 입겠는가. 완전히 다른 것은 우리가 쉽게 살펴 알 수 있지만 교묘하게 꾸며 진짜처럼 행세하는 경우 가짜를 진짜로 오인하여 속아 넘어가기가 쉽다.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 바로 ‘사이비(似而非)’이다. 사이비라는 말은 흔히 종교와 연관 지어 얘기되지만, 사이비가 어디 종교뿐이겠는가.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이 말로는 그럴싸하게 국민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사욕만을 챙기는 경우 이름은 국회의원이지만 결국 사이비이고, 국민의 안위를 지켜주어야 할 경찰이 국민의 생명은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비리를 옹호하기만 한다면 경찰 제복은 입었지만 이들도 결국 사이비이고,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야 할 스승이 학생들 위에 군림하여 학생들에게 착취와 폭력을 일삼는다면 선생님이라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이들도 결국 사이비이다.

사슴이 제아무리 말이라고 주장한들 말이 될 수 없고 들새가 제아무리 신성한 체하여도 난새가 될 수 없듯이, 자신들이 아무리 국회위원이고 경찰이고 선생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본분에 맞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사이비에 불과할 뿐이다. 비슷한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잠깐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사이비는 가짜일 뿐 진짜가 아니다.

김의정(金義貞·1495∼1547)의 본관은 풍산(山)이고, 호는 잠암(潛庵)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정자, 예조정랑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문장과 절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김의정#잠암일고#사이비#국회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