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메추라기가 붕새 따라가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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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장 큰 불행은 교만한 마음에 잘난 체하는 것이고 사람의 가장 큰 허황됨은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다

人之禍莫大乎驕矜 人之妄莫甚於多上
(인지화막대호교긍 인지망막심어다상)

―위백규 ‘존재집(存齋集)’》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위백규는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분수에 맞는 행동을 하여야 함을 강조하며,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열거하였다.

말단의 관리가 되자마자 걸음걸이와 눈빛이 거만해지고, 가난한 사람이 한 냥의 돈이 생기자마자 커다란 생선을 사고, 글씨 공부를 하는 사람은 좋은 종이에 겨우 한 장 글씨를 써보고는 왕희지(王羲之)를 들먹이면서 다른 유명한 서예가들은 무시하고, 글을 읽은 사람은 겨우 ‘통감절요(通鑑節要)’ 맨 앞부분을 읽고는 읽지 않은 책이 없는 것처럼 으스대고, 시 짓는 사람은 겨우 몇 편을 지어보고는 모든 문체에 통달하였다고 하며 조식(曺植)이나 이백(李白)과 같은 명문장가에 자신을 빗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비들은 백일장에서 좋은 성적을 받자마자 과거시험에 급제라도 한 것처럼 과거 합격자에게 하사되는 어사화를 보관할 판자를 준비하고, 조정에 처음 벼슬을 하고는 정승이 된 것처럼 의정부의 대문에서 걷는 연습을 하고, 승려는 겨우 기초적인 불경을 읽고는 고승이라고 일컫고, 지관(地官)은 지남철로 겨우 방위를 구분할 수 있게 되고는 옛 성현이 도읍을 정하고 묏자리를 정한 것을 비평한다.

지금의 우리들은 어떠한가. 위에 열거된 사례들과 비교해 볼 때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논문 한 편을 읽으면 학자가 되고, 시집 한 권을 읽으면 시인이 되고, 화분에 고추 한 포기를 심으면 농부가 되고, 외국에 한 번 다녀오면 여행 전문가가 되어 있지 않은가. 위백규는 이러한 사람들을 개미가 호랑이를 따라하고 메추라기가 붕새를 따라하는 것에 비유하면서, 작게는 자신의 몸과 이름을 망치지만 크게는 집안까지 망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작은 것을 가지고서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겨 남들 앞에 으스대면 그만큼 남들의 비웃음도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위백규(魏伯珪·1727∼1798)의 본관은 장흥(長興), 호는 존재(存齋)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말년에 주변의 천거로 옥과현감(玉果縣監)을 잠시 지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위백규#존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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