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임금의 권력이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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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백성에게서 힘을 빌려 존귀하고 부유한 것이며
신하는 임금에게서 권세를 빌려 영예롭고 귀해진 것이다
君借力於民以尊富 臣借勢於君以寵貴
(군차력어민이존부 신차세어군이총귀)

―이곡, ‘가정집(稼亭集)’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임금 또는 통치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현대 국가에는 저마다 국가의 기본 법칙을 규정하는 헌법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헌법이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1항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국가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어 제1조 2항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하여,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원칙적으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지만, 평상의 현실 속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최고통치권자이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국민이 잠시 그 사람에게 빌려주면서 살림을 맡겼을 뿐 그가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국민이 빌려주었던 힘을 거두면 통치자는 더 이상 통치자로서의 지위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신하들은 어떠한가. 일시의 권세를 믿고 백성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지만, 자리에서 물러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제 것이 아닌 것을 빌려 사용하는 자는 권한의 범위 내에서 빌린 것을 소중히 사용하다가 기한이 지나면 원래의 주인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어야 하는데, 이를 망각하고 제 것인 양 함부로 사용하고, 심지어 그 빌린 것으로 주인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기한이 차기도 전에 강제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임금이 곧 나라’라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중세 사회에서도 임금의 권력은 백성들이 빌려준 것이라고 하였다. 국민이 주인인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과 관리들은 국민의 고용인에 불과할 뿐이니 무슨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권력은 대통령이 아닌 오직 국민만이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주인인 국민의 요구가 있는 경우,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의무만 있을 뿐이다.

 이곡(李穀·1298∼1351)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호는 가정(稼亭)이다. 고려시대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였고, 원나라에 들어가서도 향시에 합격하여 그곳에서 벼슬을 지냈다. 문장에도 뛰어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이곡#가정집#임금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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