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의 생각]<2>도덕을 잘 지키는 일이 생존에 이로운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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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국정을 맡은 지도자는 선거 때 필요했던 2차원적 리더십에서 4차원적 리더십으로 승화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난주의 주제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필자는 이에 대한 답에 앞서 먼저 사회의 성격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사회란 무엇인가? 이번 주부터 시작하는 주제입니다. <오피니언 편집자> 》        
        

모든 생명체들은 사회적 존재다.

생명의 본질은 생식을 통한 영속인데, 생식은 한 개체에 의해 다른 개체가 만들어지는 일이므로, 본질적으로 사회적 사건이다. 배우자들의 협력이 필수적인 유성생식은 사회적 특질이 더욱 짙다. 사회란 말은 거의 언제나 인류 사회를 뜻한다. 그러나 사회의 본질과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른 사회들도 살펴야 한다. 개미나 벌처럼 잘 짜인 사회를 이룬 종들을 포함해서 유전자나 세포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사회까지 깊이 살펴야 비로소 사회의 모습이 또렷이 드러난다.

사회는 생명을 가진 개체들이 이룬 집단이다. 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생명체가 유전자이므로 처음 나타난 사회도 유전자들이 모인 유전체(genome)였다. 유전체들과 그것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포함한 세포, 세포들로 이루어진 기관, 그리고 기관들로 이루어진 개체라는 사회들이 그 위에 차례로 자리 잡는다. 이어 개체들이 종을 이루고 종들이 모여 생태계를 이룬다. 즉 사회들은 위계(hierarchy)를 이룬다.

○ 우주와 생태계를 인도하는 문법, 단위성

위계의 원리는 단위성(modularity)이다. 단위(module)들이 모여 바로 위의 계층을 이루고 그 상위 계층이 단위가 되어 다시 상위 계층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위계는 생명체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물건들은 부품들로 이루어지고 그 부품들은 다시 하위 부품들로 이루어진다. 조직도 마찬가지이니, 구성원들 몇이 과(課)를 이루고 과들 몇이 부(部)를, 부들 몇이 회사를 이루는 식이다.

단위성은 우주 자체에 적용될 만큼 보편적인 원리다. ‘기본 입자들(elementary particles)’은 그것들이 무엇이든 모여 소립자들의 복잡한 위계를 이루고, 소립자들이 원자를 이루고, 원자들이 분자를 이루며, 분자들이 모여 물체를 이룬다.

위계가 이렇게 보편적인 까닭은 안정적이면서도 유연하기 때문이다. 위계의 단위들은 내부적으로 결속력이 크면서도 다른 단위들로부터는 상당한 독립성을 지녔다. 그런 성격 덕분에 한 단위에서 일어난 변화의 영향이 널리 파급되는 경우가 드물다. 자연히, 조직은 안정적이고 늘 혁신을 추구할 수 있다.

우리가 구조적 문제들에 쉽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단위성’ 덕분이다. 자동차와 같은 기계들이 고장 나면, 고장을 일으킨 부품들을 바꾸면 된다. 몸이 병들면, 병든 조직이나 기관을 수술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기관이나 인공 기관으로 바꿀 수 있는 이치이다.

위계의 안전성과 유연성은 정보 처리에서의 효율을 낳는다. 하나로 된 조직에선,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위계가 들어서면, 그런 관계는 크게 줄어든다. 예컨대, 100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경우 위계가 없으면, 이론적으로는 구성원들이 각기 99개의 관계를 지녀야 한다. 한 사람이 넷을 지휘하는 위계가 들어서면, 한 개인이 지니는 관계는 8개면 된다.

공산주의 사회들이 시도한 명령경제의 근본적 문제들 가운데 하나도 그것이 위계를 무시한 체제라는 사실이었다. 명령경제는 중앙당국이 짜놓은 하나의 계획이 모든 경제활동을 통제한다. 따라서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이내 전 분야로 확산된다. 심지어 혁신을 하는 것도 주변 분야에 나쁜 영향을 미치므로, 혁신이 억제된다.

그런 체계는 자연(自然)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단위성에 바탕을 둔 기업들로 이루어진 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계획으로 대치한 명령경제는 결국 비효율로 무너졌다. 이처럼 단위성은 우주의 물질적 구조와 생태계의 사회조직들을 인도하는 ‘문법’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주의 신비스러운 모습 한 자락을 엿본다.

○ 이타주의가 결국 이기주의

사회는 자기 이익만을 챙기고 사회의 질서와 유지에는 관심이 없는 개체들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모든 사회의 중심적 문제는 ‘응집력(cohesion)’의 확보다.

사회는 구성원들이 사회에 속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때에만 응집력을 확보할 수 있다. 협력을 통해 개체들이 이익을 얻을 기회들은 많지만 협력하지 않고 배신하면 훨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배신자들이 나올 가능성은 늘 있다. 응집력을 확보하는 길은 역으로 말하면 배신을 방지하는 수단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배신을 방지할 수 있을까. 원리는 간단하다. 유전자들이 생명의 근본이고 개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존이므로 유전자들이 사회를 통해서만 존속될 수 있도록 하면 개체들의 배신은 나올 수 없다.

그런 원리를 실행하는 길들은 다양하다. 유전자의 수준에선, 난자와 정자를 생산할 때 유전자들을 철저하게 뒤섞어서 무작위적 선택을 한다. 세포의 수준에선, 성세포들을 체세포들로부터 분리해서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한다. 개체의 수준에선, 여왕만 생식하도록 해서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한다. 우리는 여기서 새삼 확인한다, 공정한 사회만이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확보한다는 사실을.

개미, 벌, 그리고 흰개미는 여왕이 생식을 독점한다. 따라서 다른 개체들은 생식할 수도 없고, 모두 여왕의 자식들이므로 혈연적으로 가까워서 배신할 필요도 없다. 그 덕분에 그런 종들의 사회는 번창한다.

하지만 인간사회는 다르다. 뇌가 발전해서 개체들의 지능이 본능보다 중요해지면, 혈연이 없는 개체들끼리 관계를 맺게 되는 상황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선 혈연만으로 사회적 응집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혈연 대신 협력을 통한 이익의 추구가 응집력을 제공한다. 이는 다시 말해 상대를 잘 대해 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되므로 이런 행태를 우리는 ‘상호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라 부른다.

이것이 바로 인류 문명을 낳은 근본적 힘이다.

상호적 이타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에서 배신을 방지하는 수단은 도덕이다. 혈연이 없는 개체들이 협력을 통해 큰 이익을 얻으려면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가 배신하지 않아서 협력의 과실이 서로에게 공정하게 분배된다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협력이 나온다. 그런 믿음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도덕이다. 풍습이나 법과 같은 사회적 강제는 도덕을 강화하는 장치들에 지나지 않는다.

도덕적 사회에선 배신이 적으므로 협력이 쉽고 거래 비용이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당연히 사회 전체가 번창한다. 도덕이 허약해지면, 웅장한 제국도 흔들린다. 자,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도덕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다음 글에선 이 물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사회#계층#단위성#응집력#이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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