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칠칠맞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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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아유, 칠칠맞긴….” 얼마 전 TV 주말드라마 속에서 만난 대사다. 상대방에게 핀잔을 주며 쓴 말이지만 “칠칠맞지 못하긴”으로 써야 할 곳이었다. 칠칠맞다는 남을 칭찬할 때 쓰는 말이기 때문. 칠칠맞다와 칠칠하다는 ‘주접이 들지 않고 깨끗하고 단정하다’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는 뜻이다.

하지만 언중은 사전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쓴다.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맞다’의 영향 때문이다. 능글맞다 방정맞다 쌀쌀맞다 등에서 보듯 ‘맞다’가 붙은 낱말은 대개가 나쁜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칠칠맞다’도 부정적인 낱말로 받아들인다.

칠칠맞다를 부정적인 의미로 쓰려면? ‘못하다’ ‘않다’와 함께 쓰면 된다. “너는 꼴이 그게 뭐니? 칠칠맞지(칠칠하지) 못하게”처럼 말이다.

‘칠칠맞다’처럼 부정적인 뜻으로 쓸 때 반드시 ‘못하다’를 붙여 써야 하는 말이 또 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 어찌할 바를 모르다’란 뜻의 ‘안절부절못하다’가 그것. 한 낱말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안절부절하지 말고’처럼 쓰기 쉽지만 ‘안절부절못하지 말고’라고 해야 옳다. 물론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다’처럼 부사로도 쓸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우연하다’와 ‘우연찮다’는 입말이 말법을 아예 바꿔 버린 경우다. 글꼴로 보면 두 낱말은 반대의 뜻이 돼야 할 것 같은데 같은 의미다. 그렇게 된 연유가 흥미롭다. 두 낱말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보니 언중이 실제 언어생활에서 같은 의미로 오랫동안 써온 탓이다. 마침내 국립국어원도 사람들의 말 씀씀이를 존중해 우연찮다에 ‘꼭 우연한 것은 아니나 뜻하지도 아니하다’라는 뜻풀이를 덧붙여 두 낱말을 같은 뜻으로 쓸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

‘엉터리’와 ‘엉터리없다’도 같은 경우다. 언중은 처음엔 ‘이치에 맞지 않는다’란 뜻으로 ‘엉터리없다’를 썼다. 그러다 뒤의 ‘없다’를 빼고 ‘엉터리이다’식으로 자꾸 쓰다 보니 엉터리가 엉터리없다와 뜻이 같아졌다. 엉터리는 이후 의미가 넓어져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뿐 아니라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까지를 가리키게 됐다.

칠칠맞다의 부정적 의미가 강해져 ‘칠칠맞지 못하다’와 같은 뜻이 될 수 있을까? 칠칠맞다는 말을 듣고 웃는 사람보다 화를 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시간이 좀더 필요할 듯하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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