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평양 부모들 “악” 소리 나는 유치원생 뒷바라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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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평양 창전거리 경상유치원을 방문한 김정은 이설주 부부가 실내체육관에서 어린이가 농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곳은 입학에만 500달러의 뒷돈 거래가 이뤄지는 명문 유치원이다. 동아일보DB
2012년 7월 평양 창전거리 경상유치원을 방문한 김정은 이설주 부부가 실내체육관에서 어린이가 농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곳은 입학에만 500달러의 뒷돈 거래가 이뤄지는 명문 유치원이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평양에도 유치원이 있다.

그런데 유치원 입학식이 끝나면 신입생은 한동안 교양원(교사)들의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철수 어린이, 아침에 뭘 먹었어요? 영희 어린이는?”

이것은 일종의 호구조사다. 아침 식사로 뭘 먹었는지 며칠만 조사하면 그 집 생활수준을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언제부턴가 당연한 입학 의례가 됐다. 각 가정의 형편을 파악하는 것은 교양원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다. 유치원은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부모는 유치원 입학 전부터 돈을 낸다. 벽지 비닐장판 페인트 횟가루 시멘트 청소도구 장난감 등 유치원에 필요하다는 항목은 수십 가지다. 대부분 유치원은 입학 때 북한 돈 8만∼10만 원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학 턱’이라는 명목으로 유치원 교사들에게 4만∼5만 원어치를 접대해야 하는 일도 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입학 전에 12만 원이 드는데, 11월 말 북한 환율로 약 15달러에 해당하는 돈이다. 얼핏 많아 보이지 않는다 하겠지만 쌀 20kg 또는 옥수수 100kg은 살 수 있는 돈이다. 이 정도 식량이면 4인 가정이 한 달 굶지 않고 살 수 있다.

부모들의 ‘유치원살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달 쌀 3kg과 식비 5000∼1만 원을 내야 한다. 반찬도 챙겨 보내야 한다. 유치원에선 점심에 국과 밥만 주고 그 외 간식으로 매일 우유 1잔과 과자 또는 빵을 한두 개씩 줄 뿐이다. 그뿐이 아니다. 교사들은 다음 날 갖고 와야 하는 각종 항목을 수첩에 적어 아이에게 보낸다. 거기에만 한 달에 5만 원 넘게 든다. 하지만 안 보낼 수는 없는 일. 못 가져가면 아이를 욕하고 벌을 세우거나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 교사들이 있다. 어떤 교사는 자기 생일은 물론이고 남편 생일, 집안 대소사 때까지 노골적으로 돈과 물건을 요구한다. 안 주면 아이에게 “너희 부모는 도덕도 없냐”고 욕하기도 한다.

교사가 요구하는 것을 잘 들려 보냈다고 마음 놓아서도 안 된다. 대청소나 환경미화 작업 때 노력 봉사를 요구하는 교사도 있고 도로 보수나 농촌 지원 등 ‘사회동원’을 대신해 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뇌물 요구는 더 많다. 교사들은 부모의 ‘열성’에 따라 아이에게 공부를 잘하거나 좋은 일을 했을 때 상으로 주는 빨간 별을 더 주거나, 싸움이 붙었을 때 한쪽 편을 드는 것으로 보답한다.

평양 유치원들도 해마다 자연관찰, 현장학습 등 행사가 늘고 있다. 체육대회도 예전엔 국제아동절인 6월 1일에만 있었지만 지금은 1년에 3번 이상으로 늘었다. 그때마다 부모들은 죽어난다. 심지어 돈이 없어 아이를 유치원에 안 보내거나 낮은 반을 건너뛰고 높은 반에 보내 빨리 졸업시키려는 부모도 많다.

평양은 교육열이 높은 곳이다. 아이 교육은 부모 재력에 따라간다. 교사들은 돈 내는 아이들만 따로 남겨 국어나 수학을 더 공부시켜 보낸다. 요즘 평양에선 유치원생 시절부터 피아노 배우는 바람이 불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배우려면 한 달에 10달러를 내야 한다. 더 많이 내면 선생이 집까지 찾아가 가르쳐준다.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이 뭘 배울지 뻔하다. 누가 전학이라도 오면 아이들이 몰려와 “너희 엄만 뭐 하니”부터 묻는단다. “(장마당에서) 화장품 장사”라는 식으로 답하면 “돈 좀 빠지니(벌리니)”라고 되묻고 “그냥 그렇다” 하고 받아친단다. 아이들은 집에 가면 엄마들이 모여 장사 이야기를 하는 것만 보고, 유치원에선 부모 돈에 따라 대접받는다. 그러니 아이에게도 집안 경제력이 최대 관심사인 것이다.

평양 유치원에도 등급이 있다. 최고 명문인 창전거리 경상유치원은 비공식 입학금이 500달러다. 또 매달 50달러 이상이 추가로 든다. 김정은이 2012년에 이 유치원을 두 번씩이나 방문했다. 북한 언론은 “장군님의 사랑 아래 어린이들이 훌륭한 교육환경에서” 어쩌고저쩌고하는데 그 유치원 입학에 얼마 드는지는 북한에서 김정은만 모를 것 같다. 참, 이 유치원은 한국에서 방문한 사람들의 단골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유치원은 졸업할 때에도 돈이 든다. 북한엔 졸업식 때 학부모가 돈을 모아 선생에게 기념품을 주는 오랜 전통이 있다. 과거엔 옷이면 무난했지만 요샌 선생이 냉장고 컴퓨터 세탁기 등을 먼저 요구한다고 한다. “나도 돈 많이 써서 이 자리까지 왔는데 본전 뽑아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 교사들의 속셈이다.

기념품까지 주고 나면 고달픈 유치원은 드디어 졸업하지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소학교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교 대학이 더 큰 입을 벌리고 차례로 기다리고 있으니….

그러고 보니 평양 유치원들은 과거 남쪽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고, 심지어 부정적인 모습까지 빼다 닮은 듯하다. 물론 가정의 부담이나 노골적으로 갈취당하는 정도는 북한이 몇 수 위이다. 남북이 서로 경험을 교류한 적도 없는데, 악덕 행태가 닮아 있는 건 참 희한한 일이다. 요즘에는 너무 돈이 많이 들어 아이를 더 못 낳는다는 푸념까지 남북이 닮았다.

이러면서도 북한은 세금 없는 사회주의 무료 교육 제도가 있는 낙원이라고 남쪽을 향해 ‘자랑질’이다. 뻔뻔하다. 정작 북한 부모들은 각종 명목으로 매일 뜯기는 데 지쳐 유료 교육제도가 도입돼 그냥 정해진 돈만 내는 남쪽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나마 살기 좋다는 평양의 유치원들이 이 정도면 지방은 굳이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다. 요즘 북한을 평등의 천국이라 떠들고, 이 말을 침 흘리며 들어주는 남쪽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해서 ‘지상낙원’ 평양의 유치원 생활을 소개해봤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경상유치원#교육열#유치원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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