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자유보다 절실한 국 한 그릇

  • Array
  • 입력 2013년 2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리야 레핀,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1870∼73년, 캔버스에 유채.
일리야 레핀,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 1870∼73년, 캔버스에 유채.
《 저녁이 되어 수용소 문을 통과해 막사 안으로 돌아올 때가 죄수들에게는 하루 중에서 가장 춥고 배고플 때다. 멀건 양배추 국이라도, 뜨뜻한 국 한 그릇이 가뭄에 단비같이 간절한 것이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단숨에 들이켜게 된다. 이 한 그릇의 양배추 국이 죄수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 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에서) 》

정치도 모르고 범죄도 저지른 적 없는 순박한 촌부가 스파이 누명을 쓴 채 10년형을 선고받고 8년째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인간기계로 학대받고 있다면? 당신이 만약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라면 불끈 치솟는 분노를 참기 힘들 것이다.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 평범한 농부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에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슈호프는 끔찍한 불행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않는다. 영하 27도의 혹한에 짐승처럼 착취당한 하루도 재수 좋은 날이라고 기뻐한다. 하긴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점심에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으며 잎담배도 구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러시아의 국민화가인 일리야 레핀도 약자를 억압하는 강자의 횡포를 그림의 주제로 선택했다. 볼가 강에서 인부들이 거대한 선박을 육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시절에는 기계가 아닌 인간의 근력으로 배를 끌어올렸다. 몸에 밧줄을 감은 인부들은 인간가축들이다. 레핀은 값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러시아 민중의 비참한 실상을 그림으로 고발한 것이다.

요즘 시대적 관심사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이다.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자유보다 소중한 국 한 그릇의 의미를 깨닫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명옥
#죄수#누명#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