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엑스트라 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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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 가면 우리 부부는 자주 실랑이를 벌인다. 좌석 때문이다.

사람들은 앞에서부터 앉지 않고 주로 뒤에서부터 앉는다. 원형 식탁일 경우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반 이상 차지하고 앉아 있으면 남은 자리에 선뜻 앉으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결혼식장에 가면 눈에 띄지 않는, 남들과 떨어진 어정쩡한 자리에 대충 착석하려고 한다. 남편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빨 빠진 것처럼 좌석이 드문드문 비면 보기 싫다면서 앞에 있는 빈자리부터 채우자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동의하지만 나도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고 싶다며 툴툴거린다. 그러나 남편은 기왕 엑스트라를 해줄 바에는 착실하게 해주자고 나를 독려한다.

누구나 나의 삶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이는 타인의 삶에서는 내가 엑스트라라는 이야기가 된다. 나의 무대에서 내가 주인공 역할을 확실하게 잘해야 하듯이 타인의 무대에서는 엑스트라 역할을 성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 남편의 지론이다.

지난 주말에는 야외공연을 보러 갔다. 수천 명의 관객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날의 주인공을 위해 열심히 박수를 쳤다. 말하자면 충실하게 관객의 역할을 즐겼다. 그러나 무대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수선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무대의 주인공도, 관중석의 엑스트라도 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넌 왜 친구의 그네만 자꾸 밀어주니? 앞으로는 네가 타. 밀어주지 말고!”

방금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오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잔뜩 약이 오른 엄마가 아이를 그렇게 다그쳤다. 풀이 죽은 아이의 표정을 따라 나의 마음까지 어두워졌다. 세상의 엄마들은 왜 자신의 아이가 늘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일도 모레도 계속 그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역할은 바뀔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요즘은 가정마다 아이가 한두 명뿐이다 보니 다들 공주이고 왕자다. 엑스트라는 없다. 그러나 엑스트라가 있어야 주인공이 빛나는 법. 날마다 되풀이되는 시시한 연속극에도 엄연히 주인공과 엑스트라가 있다. 다만, 아무리 장안을 흔드는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그 드라마 속에서만 주인공일 뿐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영원히 계속되는 드라마는 없다.

인생이란 드라마 역시 날마다 새롭게 펼쳐진다. 살아가면서 항상 ‘갑’이거나 언제나 ‘을’로 살아가란 법은 없다. 오늘의 엑스트라가 내일은 주인공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주인공이 되었을 때 아무도 박수칠 사람이 없다면, 빈자리를 채워주는 사람이 없다면, 나를 빛내주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따라서 오늘은 그에게 열심히 박수를 보낸다. 그것은 또한 내일의 나를 위한 박수이기도 하다.

윤세영 수필가
#엑스트라#결혼식장#관객의 역할#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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