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64>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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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송승언(1986∼)

오랜만에 공원에 갔어 다듬어진 길을 따
라 걸으며 자주 보던 금잔화를 보려고
했지 그런데 그곳에 금잔화는 없었다

노란 게 예뻤는데 벌써 철이 지난 거구
나 생각했지 그런데 철없는 사철나무
도 마가목도 청자색 수국도 없었다

주인이 죽어 주인 없는 개도 없었고 아
무도 없는 정자도 없었지 공원을 뒤덮
는 안개도 없었다 모든 것이 흐린 공원
이었는데 모든 것이 너무나 뚜렷이 잘
보인다

아무것도 없는 명징한 공원이었다
배후에서 갈라지는 길이 보이지 않는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서넛이 살든 생활에는 스트레스가 생기게 마련이다. 글이 잘 안 풀린다거나 싱크대 배수구가 막힌다거나 세탁기가 고장 난다거나. 집세를 올려줘야 한다거나 아이가 속을 썩인다거나, 이것이 인생이지! 평소에는 무덤덤하다. 하지만 은연중에 쌓인 스트레스가 문득 뾰족한 돌멩이처럼 가슴을 쿡쿡 찌르고, 그럴 때면 산이든 바다든 노래방이든 찾아가는 곳이 있을 테다.

화자는 공원에 간다. 전에는 자주 간 모양이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련만 오랜만에 간다. 그동안 바빴나 보다. 그런데 공원은 그 공원인데, 모든 게 낯설다. 우리나라 관청, 부지런하다. 화초뿐 아니라 나무들도 뽑아버리고, ‘공원을 뒤덮는 안개’도 사라진 걸 보니 개울도 덮어 버렸나 보다. 화자에게 추억을 줬던 ‘흐린 공원’이 사라지고 ‘명징한 공원’이 그 자리에 있다. 다른 모든 공원과 비슷한, 획일화된 공원. 자연스러움도 은밀한 구석도, 아무것도 없는! 금잔화는, 수국은, 사철나무는, 마가목은, 불쌍한 그 개는, 다 어디로 갔소? 내 추억은 어디 있소!? 악을 써봤자 들어주는 사람도 없을 테다.

풍경조차 이익과 편리에 따라 엎어버리고 개발하고,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고 사는 도시인들. 공원 풍경을 있는 그대로 기교 없이 드러낸 시에서 화자의 상실감이 배어난다. 볼수록 감칠맛이 나는 시!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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